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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해당되는 글 178건

  1. 만두 마니아에게 추천!!! '육즙가득 왕교자'&'육즙가득 새우왕교자'
  2. 모나미 153 NEO 빈티지 핑크
  3. [MOVIE] 호러와 드라마 사이 어딘가, '라이트 아웃 lights out'
  4. 편의점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맛, 녹차 티라미수 (GS25)
  5. [BOOK] 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6. 폭염이 온다고?! '샤오미 선풍기' (4)
  7. [MOVIE]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 <러덜리스 Rudderless>
  8. [MOVIE] 헐리우드의 중심에서 원스, 어게인을 외치다 <비긴 어게인>
  9. [MOVIE] 진실과 거짓, 그 무의미한 경계 <사이비> (2)
  10. [MOVIE]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말하는 건축가> (2)
  11. [Bookmark] 다상담 1 / 강신주 (2)
  12. [MOVIE] 천국도 지옥도 오직 열차 안에- <설국열차>
  13. [BOOK] 투명한 색채로 물든 삶의 궤적,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무라카미 하루키
  14. [BOOK] 끝없는 삶과 관계의 기록, <와일드 Wild>by 셰릴 스트레이드 (2)
  15. [MOVIE]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man>
  16. [BOOK] 구름배 같은 집에 담긴 900일 간의 기록. <제가 살고 싶은 집은...>
  17. [MOVIE]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케빈에 대하여>
  18. [BOOK] 죽음을 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 by 후지와라 신야
  19. [BOOK] 어느 순간 굴러 떨어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by 전민식
  20. [MOVIE] 그럼에도, 가족일 수 밖에 없는- <디센던트> (1)
  21. [MOVIE] 중요한 건, 기적을 바라는 그 마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2. [DRAMA] 미디어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 <블랙 미러 Black Mirror>
  23. [DRAMA] 문제는 사랑, 사랑?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2)
  24. [ANIME] 그래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돼지의 왕>
  25. [MUSICAL] 꿈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뮤지컬 <이채>
  26. [MOVIE]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도,로맨스는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 (2)
  27. [BOOK] 기나긴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하는 순간, <7년의 밤> by 정유정 (2)
  28. [MOVIE]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결말, <소스코드> (21)
  29. 홀로 남겨진다는 것, <언더커런트 Undercurrent> by 토요다 테츠야 (2)
  30. [MOVIE] 결여인간,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 탄생한다 <고백>

만두 마니아에게 추천!!! '육즙가득 왕교자'&'육즙가득 새우왕교자'

맛있는 것

야식으로 시판만두를 즐겨 먹는 우리 집.
맛도 있고~ 간편하고~김치와도 잘 어울리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비비고 왕교자에 빠져 살았는데, 신제품이 나왔다고 해서 호기심에 구매해 보았다.


바로 ​'​육즙가득 왕교자'와​ '육즙가득 새우 왕교자'
최근 바르다 김선생의 새우 만두에 꽂혀 있는터라, 새우 왕교자를 먼저 시도해보기로 했다.


​​왕교자 성분표는 이렇게

양이 많진 않다. 15알 정도?

간식이라서 조금만 먹기로 하고 3알을 꺼냈다.
​만두는 물에 잘 적셔서 오목한 그릇에 담은 후, 바닥에 물을 자작하게 담아 뚜껑을 덮고 전자렌지에 3분50초 돌린다. 이렇게 하면 찐 만두와 얼추 비슷한 느낌이 난다.



이렇게

이름답게 뭔가 육즙이 빵빵해 보이는 느낌이다!!




만두속의 양은 비비고 왕교자랑 비슷하다.
이정도면 실한 편~
그리고 새우 왕교자다 보니, 먹다보면 탱글한 ​​새우살이 제법 씹힌다. 일반 왕교자와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음!
육즙도 꽤 있는데, 제대로 먹으려면 한 입에 하나를 다 먹어야 할 것 같다. 일단 만두 속은 굉장히 촉촉해서 먹기 좋다.

비비고왕교자와 비슷한 만족도의 ​​'​​​육즙가득 왕교자'와​​​ '​육즙가득 새우 왕교자'

만두를 좋아한다면 한번 시도해봄직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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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미 153 NEO 빈티지 핑크

이것저것 리뷰

​​모나미라면 100원 정도 하는 검은색 볼펜,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153 라인이 꽤 좋다는 소문에 빈티지 핑크를 덥석!!! 구매해버렸다.




​​모나미 153 네오 빈티지 핑크 10,000₩
외관은 이렇게.

할인 쿠폰받아 8500₩에 구매.
모나미가 이 가격이라니!!
예전엔 가는펜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필기할 일이 많지 않다보니 0.7 정도 되는 선 굵기가 맘에 든다.


워낙 핑크를 좋아해서 일단 빈티지 핑크로 질렀지만..
요렇게 보니 빈티지 그린으로 할걸 그랬나 싶다.
약간 탁해 보여서 아쉬움.



필기감이나 그립감은 좋다.
묵직해서 미끄러짐없이 손에 감기고, 필기할때도 느낌이 부드럽다. 앞으로 자주 애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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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호러와 드라마 사이 어딘가, '라이트 아웃 lights out'

재밌는 것/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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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장르로서의 '호러'를 좋아해왔던 것 같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던 '공포특급'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 본 '케빈 인 더 우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어 '호러'란 직접적인 위험 없이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치트키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있으면 보고 즐기는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그 장르에 대해 깊이 분석하거나 고찰해 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 [라이트 아웃]을 보고,

내가 그간 호러의 어떤 '코드'를 좋아했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괴담'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인지, 나의 호러 취향은 꽤 전형적인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학교 괴담.

그 중에서도 모나리자의 눈이 움직인다던지, 인체모형이 뛰어다닌다던지 하는 류의 '친숙한 사물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혹은 빨간 마스크나 홍콩 할매 귀신처럼, 잘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만 언뜻 그럴 듯 해 보이는 인물이 주인공인 괴담들. 


영화로는 '이블 데드''엑소시스트', '링' 정도를 꽤 무섭게 본 것 같다.

특히 '링'은 그후 나의 취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깊은 원한이 어떤 매개체(비디오)로 전파되어 '불특정 다수'가 비극을 맞이한다는 플롯 자체가 오싹하다.

한 사람의 원한이 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에게만 복수를 하는 형태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1. 살인마보다는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좋고

2. 원인 제공자 뿐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고

3. 유혈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보다는 분위기 자체가 음산한 영화가 더 좋다.

   굳이 따지면 '컨저링' 이나 '디센트' 정도?

   그러니까 나는 호러에서 '인간이 알수없는 압도적인 어떤 힘 때문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즐기는 것 같다. 



*주의* 아래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라이트 아웃]은 얼추 내 취향에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적당히 반반씩 있는 셈이다. 

어둠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다이애나는, 주인공은 물론 우리들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공포스럽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불이 꺼질 때마다 긴장하게 되고, 레베카나 마틴이 든 손전등이 깜박일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이 영화관 안에서도...?'


귀신은 불빛이 없는 밤에만 활동한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어둠' 자체를 영화의 스릴 요소로 만든 점은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피'와 관련된 사람만 노린다는 점(물론 마지막에 경찰도 공격했지만),

방어 포인트가 '빛'이므로 손전등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보편적인 공포를 느끼기에는 좀 부족했고,

다이애나의 목적과 정체를 알아내고 가족 간의 관계 설정도 보여주기엔 너무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귀신보다는 오히려 가족의 사랑이 더 중심에 있는 듯하다.

실제로 다이애나가 왜 소피에게 다시 돌아왔는지, 소피와는 정말 친구였는지, 소피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그럼, [라이트 아웃]은 정말 오싹한 공포영화인가?

내 대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공포]와 [어둠], 그리고 [가족]까지 솜씨좋게 풀어 낸 볼 만한 영화인가?

라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괜찮은 호러 영화를 기다렸던 분들이라면, 

영화관에서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안 무서웠다

깜짝 깜짝 놀래키는 장면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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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맛, 녹차 티라미수 (GS25)

맛있는 것

집 앞 GS25에 맥주를 사러갔다가,
뭔가 신상이 없나 두리번 거리다 괜찮아 보이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바로 ​​유어스 '녹차 티라미수'
케익 아니고 아이스크림임.

​​녹차도 좋아하고 ​​티라미수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니 집을 수가 없었달까...,!!
GS 전용 PB상품인듯.



녹차 티라미수 답게 그린그린한 패키지~


​​뚜껑을 열면 스푼이 들어있다.


​​왠지 코코아 파우더를 좀 아낀듯한데....ㅡㅡ




한 입 먹어본 결과.,,

​​의외로 진짜 티라미수의 맛이 난다!!!

물론 아이스크림이다보니 마스카포네 치즈의 폭신하고 매끈한 식감이라던지 풍성한 맛은 부족하지만, 일단 ​코코​​아 파우더+(아이스)크림+시트의 조합은 맞으니 맛도그럴듯하다.
그리고 녹차 티라미수답게 시트에 팥앙금도 발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기대했던 맛이 조화롭게 펼쳐진다는 느낌~!!


주위에 괜찮은 베이커리가 없거나(..) 케익이 너무 비싸다면 GS25의 '​​녹차 티라미수'로 허전함을 달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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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서재
미스터 하이든 - 8점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북폴리오

 

그 날은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다.

지난 주 까지의 폭염이 무색하게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지. 혹은 간만에 하릴없이 보낼 수 있는 하루가 통째로 생겼기 때문인지.

눈을 뜨고 마주한 현실이 문득 생경해서 요거트를 만들다 바닥에 흘리고, 식수용 보리차가 가스렌지 위에서 끓다 못해 흘러 넘치는 광경을 그냥 멍하니 관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뛰고 온 다음 샤워를 하고,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사샤 아랑고'미스터 하이든' 펼쳤다.

 

*주의* 아래부터 소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헨리 하이든은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의 처녀작인 [프랭크 엘리스]는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가 팔려나갔고, 8년이 지난 후 그는 모든 걸 가진 남자가 되어있었다.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 수많은 문학상의 수상자, 우아한 귀족 저택과 마세라티의 주인, 아름다운 아내의 남편.

그리고 귀여운 금발머리 편집장의 내연남.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내연녀 베티가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이다.

아내 마르타와 이혼한 다음, 그녀- 베티와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살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왜냐하면 마르타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타는, 세상에는 헨리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든 소설을 직접 쓴 장본인이었다.

 

그 후로 사건은 예상할 법한 방향으로 일어난다.

 

대답을 생각해 놔야 겠군. 헨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상황과 대면하기 위해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자 빗속에  베티가 서 있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표정은 진지했다.

트렌치 코트 속에는 체크무늬 투피스를 입고 있었고 금발을 높이 틀어올린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가 틀어올린 머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건강미가 넘쳤고 그에게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헨리, 부인이 다 알고 있어요."

 

 

의도된 살인, 예기치 않은 실수, 뜻밖의 인물, 운명의 장난...

이 모든 요소들이 교묘하게 조합된 끝에 결국 미스터 하이든의 인생은 파국을 맞이한다.

 

헨리 하이든은 결국 어떤 인간이었을까?

그를 줄곧 쫓아 온 파시의 기억 속의 그는 포악한 맹수이자, 자비없는 범죄자였다.

실제로 기스베르트 파시가 헨리를 처음 만난 성 레나타 보육원에서, 헨리는 자기가 2층 침대에서 자고싶다는 이유로 파시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렸다.

그러나 다시 만난 그는 파시를 끔찍한 사고로부터 구했고, 심지어 자신의 사비를 들여 특실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헨리의 머릿속에는 온갖 잔혹한 계획이 들어있었고, 그것  중 일부는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선 가게의 세르비아인-오브라딘에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브라딘의 가게가 어려워지자 그의 아내에게 몰래 돈을 쥐어주기도 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일부나마 털어놓기도 한다. 

어떠면 그런 인간적인 모습 조차 헨리에게는 일종의 연극이었을 지 모르지만.

그래도 오브라딘에게 만큼은 그렇게 보이고 싶었기에 그런 연극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르타 하이든은, 사실은 살아있었던 걸까?

헨리 하이든은 어디로 간걸까?

그는 왜 옌센 형사와 함께 부모님과 살던 옛 집에 찾아간걸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마르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엇이 당신을 타락으로 몰아넣든,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든, 나는 당신의 광기 바깥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보호해 주었고 이해해 주었고 내가 나 자신으로서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마음속 악령과의 음침한 만남에 서둘러 가느라 이 훌륭한 결말을 내던졌어요.

내가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모리아니 대표님께 보낼게요.

 

사랑하는 아내 마르타 드림.

책을 덮고 나니-

어쩌면 이 소설은 스릴러가 아니라, 진정한 로맨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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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온다고?! '샤오미 선풍기'

이것저것 리뷰

우리 회사는 산기슭에 있다.
도 많고 청설모도 많고 벌레도 많다.
그리고 겨울에 무지 춥다.

하지만 여름에는 도심보다는 시원한 편이다.
그래서 그간 폭염이니 뭐니 해도 회사와 집에서는 별로 덥다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지난 주는 정말 더워서, 결국엔 사버렸다!
대륙의 아이콘, 샤오미!
샤오미에서 만든 선풍기!!


찾아보니 잘못하면 usb 단자가 망가질 수 있다고 해서..

들고다닐 요량으로 샤오미 배터리를 함께 구매했다. 

개봉샷





이렇게 해놓고 보니...생각보다 크다?!

잘 들고 다닐 수 있으려나..;;;


선풍기를 틀어보면 이렇게


선풍기는 씽씽 잘 돌아간다.

얼굴에 대고 있으면 시원~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성능이라면 들고다니기는 괜춘할 듯!!

그리고 배터리에도 온오프기능이 있어 필요하면 끌 수 있다.



실내에선 쓸 일이 많진 않지만 외출할 때 하나쯤 챙겨가면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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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 <러덜리스 Rudderless>

재밌는 것/영화



러덜리스 (2015)

Rudderless 
8.3
감독
윌리암 H. 머시
출연
빌리 크루덥, 안톤 옐친, 셀레나 고메즈, 로렌스 피쉬번, 펠리시티 허프먼
정보
드라마 | 미국 | 105 분 | 2015-07-09
글쓴이 평점  


*주의*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다.

도발에 능숙하고, 뻔뻔하며, 지기 싫어하고, 그만큼의 능력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기는 데 익숙하다.



그런 그와 아들의 관계는 어땠을까?

아마도 보이는 것만큼 가깝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사진에 있는, 둘이 같이 음악을 하던 시절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족이 소중했다면, 

'사건'을 저지르기 직전 걸려온 아버지와의 전화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테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어떤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그 '사건' 이후 CD를 받을 때까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샘은 계속 아들의 노래를 듣는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일할 때도, 집에서 쉴 때도 계속. 

그리고 자신이 그간 읽지 못했던 아들의 외로움과 분노를 발견한다. 

그는 노래를 통해 '사건' 전의 아들에게 가까워지고,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아들 또래의 쿠엔틴과 함께하면서 마치 예전처럼 아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패션이나 연애에 대해 잔소리를 하면서 진짜 아버지처럼 굴기도 하고.

하지만, 아들의 전 여자친구의 등장으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쿠엔틴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러덜리스의 노래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다.

조쉬는 '사건'의 가해자다.




"My Son, My son, My son"



"나의 아들은 살인자입니다"라는 담담한 고백을 마치고, 

샘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노래를 부른다. 



I will find a way to sing your song

So sing along


What is lost can't be replaced

What is gone is not forgotten

I wish your here to sing along




늘 박수와 환호성으로 떠들석했던 펍 안은 조용해지고,

차마 박수를 치지는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을 수도 없는 비극.못한 채 눈물 젖은 얼굴로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그 노래를 부를수도,

다만 이제 진정한 '아버지'가 된 한 남자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말 못할 감정이

함께 있는 공간의 모두에게 울렸으리라. 

이것을 그냥 운명, 이라고 말하면 끝나는 걸까.  


"But I know where I belong"


앞으로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2년간 그의 도피처였던 보트를 팔아버리고, 
그 작은 악기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쿠엔틴이 가게로 돌아와 뭔가 어색한 듯한 얼굴로 단독공연 티켓을 내밀지도 모른다. 그럼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또다시 술로 삭이려 할까. 더이상 부를 수 없는 아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쩌면- 아직은 몹시 작은 조쉬의 동생이 자라나 그의 의붓형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그의 노래를 듣게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자라서 멋진 뮤지션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콘서트에서 아무도 모르는 형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할지도 모르잖은가. 


결코 부를 수는 없겠지만. 


Rudderless [|rʌdərləs]

키를 잃고 방황하는, 어쩔 줄 모르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습일지도 모를.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소유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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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헐리우드의 중심에서 원스, 어게인을 외치다 <비긴 어게인>

재밌는 것/영화



비긴 어게인 (2014)

Begin Again 
8.6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타인펠드, 제임스 코덴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4 분 | 2014-08-13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영화 [원스 Once]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크지 않은 극장에는 제각기 온 사람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앉아있었다.

그 안의 공기는 미지근한 듯 따스했고, 이따금 객석 어딘가에서 아, 하는 탄식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청소기를 질질 끌고 뒤따라가던 그녀의 치맛자락이 생각난다. 

작은 악기점에서, 그가 내는 선율에 가만 가만 목소리를 얹던 그 장면.

레코딩을 하던 밤, 아무리봐도 브레멘 음악대보다 나을 것이 없어보였던 그 밴드가 만들어내던 청정한 멜로디.


아, 나는 그 영화를 정말 사랑했다. 

그 음악도. 그 화면도. 어딘가 어설프던 남녀 주인공과, 그 날 극장 안에 떠돌던 온화하면서도 쿱쿱한..마치 안락한 다락방 같던 공기마저도.



사실 [비긴 어게인 Begin Again]을 보게 된 것은 [원스]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곳곳에서 쏟아지는 극찬에 영화에 대한 기대는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비긴 어게인]이 나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착한 영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헐리우드 특유의 '착하고''가족적이며''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데 있다. 

성공한 남자친구와 헤어져 뉴욕 한 가운데를 방황했어야 할 그레타에게는 마침 그날 연락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회사에서 쫓겨나 진정한 뮤지션을 찾던 댄은 마침 그날 바에서 기적처럼 스타성있는 싱어송라이터를 만난다. 마치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듯 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다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맥과 재능만으로 거리에서 앨범을 레코딩하기로 결정한 그 들 콤비가 당연한 듯 온라인의 화제를 불러모으며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대중'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던 그레타.

하지만 그녀 또한 대중이 듣고 싶은 예쁜 노래를 한다.

거리에서 레코딩했다기엔 너무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듬어진 소음들과, 우연히 캐스팅한 동네 꼬마들의 멋진 코러스까지 합쳐지면 전문 스튜디오 못지 않은 만듦새를 뽐내는 음악이 완성된다. 


물론, 가난한 뮤지션이니 완성도도 허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배우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진정성있는 노래를 하고싶어'라고 말하는 영화의 이중성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패션에서 말하는 '빈티지'가 진짜 사용해서 낡은 것이 아니듯, 

열정만으로 만들었다는 노래에서 일부러 넣은듯한 흠결이 보인다면 보는 입장에서는 '역시 헐리우드'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스]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이 영화는 '좋다'.

싱긋 웃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미소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어벤져스의 일원이 아닌 마크 러팔로의 모습도 반갑다. 

여러 장소를 오가며 인물들을 비추는 연출은 마치 함께 뉴욕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맙소사, 애덤 리바인이 아닌가!! 

그의 모습과 목소리로 가득 찬 스크린을 언제, 또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이 가을, 다시금 이어폰을 꽂고 싶게 만드는 영화.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소유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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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진실과 거짓, 그 무의미한 경계 <사이비>

재밌는 것/영화



사이비 (2013)

The Fake 
8.4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정보
애니메이션, 스릴러 | 한국 | 100 분 | 2013-11-21
글쓴이 평점  




여기, 한 마을이 있다. 

오래 된 사람들이 오랫동안 모여 살아온 곳이자, 곧 물에 잠겨 사라질 마을.

수몰 예정 지구 통지를 받은 바로 그 날부터 이미 물 속에 갇힌 듯, 정체된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런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반석 교회'와 '성철우 목사'라는 이름의 구원이었다.


-아래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마을에서 일어난 상황을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립하는 인물인 최경석과 김민철은 선악이 아니라 惡과 惡의 대결에 가까우며,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가장 무고해보였던 성철우 목사 또한 惡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않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 번 살펴보자.

최경석 집사.

팩트를 아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장 명백한 악惡이다. 그는 이미 전과가 있는 사기꾼이며, 경찰이 수배 중인 인물이다.

그가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척 하는 이유 또한 반석 꽃동산 건립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을 빼앗기 위해서이고, 성철우는 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부하들을 시켜 자신의 계획을 망치는 김민철을 폭행하는 것은 물론, 영선에게 등록금을 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술집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이 마을을 택하여 반석 교회를 세운 덕분에 침체되어 있던 마을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오래 앓던 칠성의 부인도 병석에서 일어나 밝은 얼굴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성은 그런 부인의 모습에 행복해한다. 비록 그가 약속한 것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거짓이었을지언정,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얻은 희망은 거짓이 아니었다.

  

김민철은 어떤가.

주정뱅이에 폭군, 고등학생인 딸이 모은 용돈을 노름하는데 탕진하는 쓸모없는 이 남자는 자기 가족에게조차 배척당하는 존재이다. 그가 최경석 일당의 사기 행각을 밝히려는 이유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던 반석 교회의 정체를 알고 진실을 전달하려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 김민철인 것도 사실이다.


상냥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하나님 안에서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성철우 목사.  

언뜻 보기에 그는 우연히 최경석 일당의 범죄에 휘말린 가엾은 희생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철우는, 비록 비난받을만한 강력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음으로써 다른 이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거대한 악을 고개 숙이고 수용하는 것 또한 누군가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성 목사는 과연 순진한 얼굴과 온화한 미소, 그리고 거룩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진정한 '선'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단순히 사기라는 범죄의 피해자에 불과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수배 전단 위의 사진을 내밀었을 때, 단호하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성철우 목사의 대답에 동조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이 마을이 다다른 비참한 결말의 책임에서 마을 사람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체된 마을을 떠나 타지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힘겹게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이 약속한 휘황찬란한 미래를 믿고 따를 것인가? 마지막 칠성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반석 교회가 약속하는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고 '믿기로 하는 편'이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기에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 결과가 성 목사와 반석 교회에 대한 맹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마을 사람들도 결국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누가 영선에게, 교회는 사기이니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는 비참한 생활을 견디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허울좋은 입에 발린 말이라고 해도 그 것이 있었기에 영선은 그 시간을 행복해하며 보낼 수 있었다.

칠성의 부인도 그렇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계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그것을 믿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당장,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데. 


이 마을에서의 참극은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타고난 악''악에 맞서는 악', '선을 자처하는 악'과 더불어 '악을 탐하는 악', 혹은 '악을 방조하는 악'이 각자의 욕망을 극한까지 추구한 끝에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 것인가하는 자조와 함께.



The truth is, whatever you choose to believe in.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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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말하는 건축가>

재밌는 것/영화


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2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유걸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건축가 정기용.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그를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서 처음 만났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 소박한 차림새, 하지만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열정적으로 말하는 남자.

면사무소 설계를 맡은 다음에,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아니라 먼저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했던 목욕탕을 공공건물에 넣은 건축가.  
관람하는 주민들을 위해 등나무로 관중석의 그늘을 만들어준 건축가.
화려하거나 세련된 그런 건축은 아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공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치밀하게 구상하고 설계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들.

그런 정기용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나의 일을 혹시 사용자, 소비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닌 지 반성했더랬다.



"내가 생각하는 집은 
일상이 반복되는 친숙한 공간일 뿐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 다큐멘터리. 

이 영화의 평점은 영화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위대한 건축가의 삶에 존경과 감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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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 다상담 1 / 강신주

서재/북마크


다상담. 1: 사랑 몸 고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동녘 | 2013-08-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에 지친 당신에게 바치는 강신주의 돌직구 상담!철학자 강신주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우리가 느끼는 고독의 정체는 바로 그거에요. 몰입할게 없는겁니다. 이렇게 표현할수도 있죠. 사랑하는 게 없다고요. 밤새도록 함께 있어도 시간이 가는지 모르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나는 왜 이렇게 고독하지'를 묻지말고, 이렇게 되묻는 게 좋아요. '언제부터 세상에 대해서 몰입하지 않았을까?'라고요. 세상이 풍경으로 보일 때, 우리는 고독해요.

-p178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해 나를 위한 일들조차 습관처럼 포기하는 요즘의 나는,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몰입이란 뭘까.
세상의 시선과, 나 자신의 에고에서 눈을 돌리고 어떤 대상에 완전히 빠진다면 

나의 삶은, 언젠가의 그 날처럼 또 다시 빛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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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천국도 지옥도 오직 열차 안에- <설국열차>

재밌는 것/영화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글쓴이 평점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 내용에는 관람자의 상상에 의거한 줄거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Goodbye, global warming!!"

 

인류는 재앙을 앞두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도 오래 함께 해 왔기에, 그리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파멸의 징조가 시작되었기에. 지구 온난화라는 적이 인류의 생존에 이렇게까지 치명적일줄은, 그 위협이 바로 눈 앞에 밀어닥칠 때 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CW-7은 희망이었다.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인간이 살기 힘겨울정도로 올라가버린 기온을 다시 떨어뜨릴 수 있는 어떤 물질. 각국의 정상들은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W-7의 대량 살포에 동의했고, 대기권 높이 치솟은 CW-7은 언뜻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년째 천장으로 치솟던 기온 그래프가 마침내 빠른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리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CW-7에는 적정기온을 맞춰줄 수 있는 기능은 없었다. 떨어지기 시작한 기온은 다시 올라올 줄 몰랐고, 모든 것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구에는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왔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철로 위를 달리는 어떤 쇳덩어리 내부 뿐이었다.

 

설국열차 Snowpiercer, 그 열차가 인류의 마지막 구원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릴 때 부터 열차광이었던 윌포드의 꿈이 실현된 순간과 새로운 빙하기의 시작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을 뿐,

열차 안의 절대자, 윌포드는 그저 '열차'안에서 완결된 세계 Closed circle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거칠게 말하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동체랄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 처럼, 열차는 1년 주기로 세계를 순회한다.

열차 안에는 주거지역과 유흥시설, 학교와 병원이 있고, 수족관과 온실에서 농수산물도 얻을 수 있다. 

필요한 물은 외부의 눈과 얼음을 녹여 조달한다. 내부의 질서는 절대자 윌포드와 메이슨 총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강력한 군인들이 체제를 뒷받침한다. 절대왕정을 달리는 열차 안에 밀어넣으면 이런 모습이 될까. 성스러운 엔진으로부터 부여받은 절대권력의 윌포드. 그의 대리인 메이슨. 그에 따르는 충실한 추종자들. 그들-앞쪽칸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신발이 머리 위로 올라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고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역할을 고작 신발로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왜 그들에게 있는가?

꼬리칸의 젊은 리더, 커티스의 계획은 이랬다.

문을 열 수 있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가 있는 감옥칸까지의 모든 문이 한꺼번에 열리는 시간은 단 4초.

그 문들이 닫히지 않게 한번에 막아 감옥칸에 도달해서 그를 포섭할 수 있다면, 앞쪽칸까지 갈 수 있다..!

이 열차의 지도자는 길리엄이 되어야 해! 

그렇게 꼬리칸 해방을 위한 커티스의 반란이 시작된다.

 

 

각자의 이유로 앞을 향해 돌진하는 꼬리칸 사람들.

한없이 진지한 그들에게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독특한 존재다.

우선, 이들 부녀는 꼬리칸 해방에 관심이 없다. 꼬리칸에도, 꼬리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건 오직 크로뇰 뿐이다.

하지만 커티스와 에드가, 타냐에게는 이들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야말로 앞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유일한 열쇠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휴머니즘이나 진정성이 아니라 열쇠 자신이 원하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아이러니.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자주 다루어진 캐릭터이긴 한데, 영화에서 보는 건 또 새롭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메이슨, 이 사랑스러운 악당!

틸다 스윈튼은 인터뷰에서 이 캐릭터에 대해 '나쁜 리더의 모든 특징을 모아놓은 괴물' 이라고 평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메이슨이 좋은 2인자 급의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폐쇄된 조직에서 좋은 2인자의 필요 조건은 '1인자에 대한 믿음' 이니까.

그런 면에서 메이슨은 윌포드에 대한 확고하고도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교실 칸에서의 사건 또한 메이슨이 준비했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길리엄은 배신자일까?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달리는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안에서, 윌포드가 구축해놓은 균형잡힌 시스템을 파괴한 다음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No' 라는 결론을 내렸을테고,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바에야 이 체제에 협력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에 한번씩, 젊은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사람들의 지지를 모아주는 식으로 협력했을 테고. 빨간 쪽지의 정체를 알면서도 앞쪽칸으로 가서 우리를 도와주는 동료라는 식으로 전한 것도 그였을지도 모른다.

 

 

열차는 달린다, 그러나

 

윌포드는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그에게는 열차 안이 완벽한 세계이므로.

열차 안의 물건들은 탈때 가지고 온것이 대부분이고, 안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 다 떨어지면 멸종(extinct)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설국열차 안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은 다들 앞 칸으로 갈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윌포드의 학교에서는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고 가르치며, '얼어죽은 7명 (Frozen 7)' 을 교육적 상징물로 삼는다.

하지만 열차에는 온도계도 있고,원한다면 밖을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예카테리나 브릿지를 지날 때마다 "올해는 작년보다 2°C 정도 올랐네요. 남극 펭귄 정도는 활동할 수 있는 날씨입니다." 라고 안내해 줄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탑승객들은 탑승할 때의 시간 그대로 멈추기를 원한다. 다소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자유와 풍족함을 누리면서 그 안에서 꺠지 않기를 원한다.

 

영원히 달리는 열차는 영원할 것만 같지만, 결국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저것도 문이야. 내가 열고 싶은 건 저 문이라구!"

남궁민수의 이 대사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밖으로 나온 요나와 티미는 아마..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에서 언뜻 봤는데,

황인종과 흑인종이 새로운 조상이 된다는 부분도 재미있지 않냐는 그런 내용이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단순히 기술이나 문명뿐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좀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의 절반 정도가 눈으로 덮여져, 아주 춥고 에스키모 마냥 얼음집에서 북극곰이랑 술래잡기하면서 살아야할지 모르지만,

문명이 몇백만년쯤 뒷걸음질친 새로운 세계에서 인종과 국적과 사상과 종교의 경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그런 희망을...

 

열차 밖에 펼쳐진 세계에서 읽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가지 생각들+의문점

 

+남궁민수는 왜 감옥칸에 들어갔을까?

그는 꼬리칸의 사정을 모른다. 그리고 18년 전에 탑승한 커티스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최소한 제대로 돈을 내고 탑승한 승객이라는 소리인데...

왜, 감옥칸에 딸과 함께 갇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죄가 있는 사람은 그냥 죽이면 될텐데 굳이 감옥칸이 따로 있는 이유는,

승객이기 때문인걸까?

 

 

+커티스는 지난 혁명에서는 무슨 역할을 했나.

몇번의 혁명을 거쳐 살아남은 걸까?

혹은, 이번에야 말로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느낀 걸까?

 

 

+생선, 육류 등의 개체 수를 면밀히 계산하여 제한하고 있다면, 당연히 산아제한도 있을 것이다.

앞쪽칸에서는 출산 허가제 같은 것이 실시되고 있지 않을까?

아이를 낳아도 미래가 없으니 자발적인 피임 시술 같은 것이 성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꼬리칸은 일종의 인력시장같은 것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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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투명한 색채로 물든 삶의 궤적,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무라카미 하루키

서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민음사

 

 

나는 어쩌면 영원히 가짜에 머물지도 몰라,라는 초조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사실 나는 꽤나 여러번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무엇인지,

다들 착착 자기 자리를 알아서 찾아가는데, 나는 왜 아직도 헤매고 있는건지 항상 고민하고 불안해 했다.

몇년이고 노력해서 겨우 손에 닿을락 말락한 지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겨우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볼 때면 더욱.

나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결국 누군가의 대체품이나 모조품으로만 기능하다가

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네 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다자키 쓰쿠루가 느낀 감정도 그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성에 색깔이 들어가 있지 않다, 는 것은 언뜻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묘하게도 그와 나머지 네 사람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만일 내게도 색깔이 있는 이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도 없이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랬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텐데, 하고.

 

쓰쿠루는 가끔 자신이 왜 이 친구들 그룹에 속하게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진정 내가 이 친구들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오히려 내가 없으면 나머지 네 친구는 더 자유롭고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다들 아직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뿐이 아닐까? 그걸 깨닫는 건 시간 문제 아닐까? 생각할 수록 쓰쿠루는 혼란스러웠다.,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란 마치 단위가 없는 물질을 계량하는 것과 같았다. 저울의 바늘이 지잉 소리를 내며 딱 한군데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렇다. 다자키 쓰쿠루가 그렇게나 늦게 순례를 떠나게 된 것은 마음 한 구석에 자신은 그 그룹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유도 모르고 내쳐져 죽을만큼 괴로워하면서도 왜? 냐고는 묻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당연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는 치유인 동시에 저항이자, 독립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벌에 대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것은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객체로 마주선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례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 후에야 그는 한 그룹에 속하고 싶었던, 그러나 속하지 못했던 미숙아가 아니라 역을 좋아하고 반듯하며 어머니 팬이 많았던 다자키 쓰쿠루로서 그들을 마주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사는 방식은 아마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텅 빈 그릇 같은 것.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음식을 돋보이게 해주는, 질박한 멋이 있는 그릇.

건물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오고 나가는 열차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역.

색채가 없어도-색채가 없기에 오히려, 어떤 색이든 돋보이게 해주는 마법.

 

인생의 목표를 정해라,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외쳐대는 요즘이지만, 뭐 어떠려나.

 

그런,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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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끝없는 삶과 관계의 기록, <와일드 Wild>by 셰릴 스트레이드

서재
와일드 - 10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나무의철학


종종 삶이 맘 같이 풀리지 않거나, 또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나 자신은 답답할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만으로 나를 둘러싼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지 않을까-하고. 
끊임없이 두 발을 움직여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간다면, 그 곳에 도착하는 순간 나 자신이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 <와일드 wild> 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도 어쩌면 그런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한꺼번에 밀어닥친 불행은 26세의 그녀가 감당하기는 너무 버거웠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되살아나는 아버지의 기억, 그리고 마약, 외도, 이혼...

자꾸만 자신의 삶을 파멸로 밀어넣으려는 자기자신과 맞서기 위해 셰릴이 선택한 것은,

그저 한없이 걷는 것이었다.

걷고

걷고

걷고

걷다보면 언젠가 도달할 목적지를 향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산맥과 사막, 황무지로 이루어진 4,285km의 그 길은 그녀를 불가사의한 힘으로 끌어당겼고,

태어나서 제대로 운동을 해본 적도 없던 셰릴은 자신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은 셰릴이 걷는 여정에서 겪은 고통과 그 와중에 느끼고 생각한 것들, 그리고 만난 사람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쩌면 지루할만큼 끝없이 걷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고민을 인생의 가장 충격적인 시기에 가장 심각한 강도로 겪고있는 한 여성이 

길 위에서의 만남에 의해 어떻게 치유되어 가는 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셰릴의 시선을 빌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으면서-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무한한 애정을 베풀어 줄, 그런 사람이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길 위에서 허덕이는 나의 짐을 덜어주고 때로는 쉬어도 좋다고 다독여줄 사람을 생각했다. 

아주, 큰 사람 말이다.


그런데 몇 번인가의 만남과 이별을 겪고 나니..

사람들은 그냥 다 비슷한 고민과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비록 많이 가진 것 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나름의 번뇌가 있고 자신이 짊어진 인생의 무게를 힘겹게 받치고 있었다. 

조금 더 깊게 고민하고, 조금 더 현명해진 사람은 있어도, 그들 역시 각자의 짐을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세상을 쉽게 살 수 있게 해줄 아주 큰 사람은, 그런 사람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 누군가를 만나 감정을 나누고 미래를 얘기하는 건 불필요한 일일까?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 하는 여정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혼자여도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닐까?


셰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비록 혼자서 견디기 버거운 짐을 지고 나선 길이지만, 길 위에서의 만남은 좀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길 중간 중간에서의 그런 만남이 없었다면 진즉에 포기하고 돌아섰을 길을, 

조금 더 가면 누군가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이 길 어딘가에 나와 함께 인생의 몇 시간이나마 함께 했던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신발끈을 동여맬 수 있게 해 준다고.

그러니까 비록 상처가 늘어갈 뿐인 길이라도, 유쾌하지만은 않은 만남이었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동반자 (Companion)"


각자 다른 과거와 사연을 갖고 떠나온 길일 지라도, 

외모와 말과 생각이 달라도 서로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같이 걷는 동행.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인연과 함께 한 시간과 추억이 있다면 내 삶의 여정도 조금쯤은 더 즐거울 지도 모른다. 


언젠가 맘 맞는 이와 함께 제주도 해안을 자전거로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바람은 거칠고 볕은 따갑겠지만, 

함께 같은 길 위에서 같은 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기억이 조그만 불씨로 남아 나의 일상에 작은 온기를 전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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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man>

재밌는 것/영화
서칭 포 슈가맨
  • 감독 : 말리크 벤디엘로울
  • 미국에선 ZERO, 남아공에선 HERO?!
    팝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가수, ‘슈가맨’의 놀라운 이야기!

    <.. 더보기




<서칭 포 슈가맨>의 초반부에는 슈가맨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슈가맨을 사랑하고 궁금해하는 수많은 팬들과, 음반 제작자들과, 그리고 동료들이 나타나 그에 대해 한마디씩 할 뿐이다. 

사실은 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슈가맨의 동료가 하는 얘기와, 

팬들과 음반 제작자들이 하는 얘기는 묘하게 시제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굉장한 가수가 있다는 말에 디트로이트의 뒷골목을 찾아간 프로듀서들은

그 가수, 로드리게즈의 재능에 반해 당장 계약을 맺는다. 

제작자들은 디트로이트의 작은 펍에서 노래하고 있던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마치, 현자나 예언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을 사로잡은 가수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슈가맨’으로 알려진 ‘시스토 로드리게즈다. 

그 당시 서섹스 레코드의 소유주이자 마이클 잭슨, 마일스 데이비스, 자넷 잭슨 등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일했던 클라렌스 아반트가 그의 음악에 반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음반은 얼마 팔리지 않았고, 

로드리게즈는 단 두 장의 음반을 발매하고 사라진 무명가수로 남았다.

왜 그랬을까?

로드리게즈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들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같은 최고의 팝스타들을 배출해낸 베테랑들이었다.

게다가 시스토 로드리게즈의 성공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건 두 음반의 잇따른 실패로 로드리게즈는 결국 음반사와의 계약을 연장할 수 없었고, 

그는 디트로이트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음반이 어떻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전해졌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아마 남자친구를 찾아온 미국의 한 소녀가 들고 온 음반 중에 섞여있었던 것 같다, 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로드리게즈의 음악에 푹 빠졌고, 그의 음반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곧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남아공 청년들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로드리게즈의 멜로디는 아름다웠고, 가사는 솔직했다. 

남아공 청년들은 그의 노래에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에 힘입어 자유를 노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스토 로드리게즈는 그가 모르는 사이, 

가본 적도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전설이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로드리게즈를 찾아낸 것은 남아공의 한 팬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로드리게즈의 딸이었다.

지구상의 두 점은 마침내 하나로 이어진다.  





나는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질은 군데군데 조악하고, 전개는 어딘가 어설프다. 


다만,이런 형태로나마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아주 좋은 이야기'라고는 생각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그 존재를 믿게 해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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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구름배 같은 집에 담긴 900일 간의 기록.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서재
제가 살고 싶은 집은 - 10점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서해문집

 

 

건축주가 말한다.

 

  "이일훈 선생님, 선생님과 집을 짓고 싶습니다."

 

건축가가 말한다.

 

  "좋습니다. 송승훈 선생님.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할까요?"

 

  송선생님은 어떤 집을 꿈.꾸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나요?

 

 

낡은 책과 다듬지 않은 돌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라는 이 책이 참 좋다.

건축가와 건축주, 일로 만난 사이지만 스무 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 넘어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들의 편지가 정겹고,

읽는 사람의 찾는 수고를 덜어주는 참고 사진과

흐트러진 스케치에서 조금씩 형태를 갖춰나가는 도면도 마냥 신기하다.

 

집주인, 국어선생 송승훈이 살고 싶은 집은 이랬다.

 

땅의 바람길을 아는 집이면 좋겠습니다.

 

구름배 같으면 좋겠습니다.

구름이 부드럽게 감싸안고 공기 잘 통하는 하늘로 사람을 두둥실 띄워가는 듯 편안한 방이길 꿈꿉니다.

 

집 분위기는 이웃에 위세 부리지 않고, 주변을 비웃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당에는 파라솔이 있기 보다는 궁둥이 대고 쭈그려 앉을 수 있는 돌멩이나 나무 의자가 있으면 예쁘겠습니다. 

 

종종 부잣집에서 만나는 얇고 뾰족한 철기둥이 세워진 대문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어깨에 힘 딱주고 버티는 모양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찾아오는 이와 막걸리 한잔 마실 수 있는 자리로 툇마루가 있기를 바랍니다.

지칠 때 방에서 나와 바깥바람 쐬며 누워서 낮잠자기도 하고요.

 

꾸미는 장식이 적어도 질박한 멋을 바랍니다. 그렇다고 매끈한 표면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비가 들이치면 막아서 편하게 창문 열어둘 수 있고, 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리면 볕을 가려서 시원한 처마가 길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복도는 한공간과 다른 공간을 이어주면서, 그 과정에서 어떤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때로 멈추어 서거나 주저앉아서 무엇인가를 할 마음이 들게 하는 곳이면 좋습니다.

 

책장은 번듯하지 않아도 책이 들어가기만 하면 좋습니다. 자유롭게 집 구석구석에 적응해서 책장이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글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치 시와도 같아서

읽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정말 구름배를 탄 것마냥 맑아지는 기분이다.

 

그에 화답하는 건축가 이일훈의 글 또한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서 연륜이 묻어나고.

건축주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피력한 후에도 조심히 건축가의 의견을 구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건축가 또한 건축주의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이 필요할 때는 가감없이 덧붙이며,

어디어디를 둘러보면 더 좋을 거라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일로 만난 사이라기 보다, 좋은 사제 지간이나 인생의 선후배 같은 모습이 보기 좋다.

 

그래서일까.

완성된 집은 집주인의 품성 그대로,

'이웃에 알맞게 열려 있어서 그네들이 다가오려 할 때 덜 머쓱한' 구름배 같은 집이 되었다.

시멘트로 지은 한옥이라기엔 너무도 포근하고, 때로는 장난꾸러기 같고, 때로는 엄격한 스승같은 얼굴의 잔서완석루.

 

사실, 나는 한번도 집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적이 없지만.

 

빛과 바람이 알맞게 통하는

시원한 툇마루와 마당이 있는

집안 구석구석 책장이 어우러진

내가 살아가고픈 모습을 닮은, 그런 집이 있다면 좋지않을까하고. 조금은 부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집주인 송승훈 씨의 마지막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할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고 저는 늘 생각하고 삽니다.

꿈은 몸을 긴장시키는 무엇이고, 그러기에 꿈꾸기를 잊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삶은 달라지겠지요.


되는 만큼만 해주십시오. 저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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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케빈에 대하여>

재밌는 것/영화
케빈에 대하여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감상평 들 중에서, 유독 그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모성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형벌' 이라고.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현재의 에바는 무엇인가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거절과 냉대에 익숙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의 그녀는 좀더 자유롭고 자신감 넘쳐 보인다.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영화는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는 에바의 회상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케빈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자신이 케빈이 그런 일을 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닌지, 를 기억속에서 필사적으로 찾아내려 하는 듯한 그녀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행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자유로운 사랑 끝에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비록 한 남자의 곁에서 아이를 낳고 결혼 생활을 해 나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는 대기실에 가득한, 기쁨에 찬 임산부들 틈에서 지독한 불편함을 느낀다. 무엇인가에 구속된다는 불안감.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되었다는 박탈감. 상실감.  자신이 낳은 아이를 그저 사랑과 애정으로 보듬어 주기엔 자신 안에 자신이 너무 컸던 에바. 그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한다. 아이에게 어색하게나마 말을 걸고, 산수를 가르치고, 공놀이를 한다. 하지만 아이, 케빈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 중 오직 그녀에게만 전력으로 반항한다. 오직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배변을 못가리는 척을 하고, 숫자를 틀리게 부르고, 그녀가 건네는 말을 무시하고..그렇게 모자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에바에게 절대적인 모성이 없었다는 것, 끝내 그녀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었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죄일까?

하지만 누구든 자신을 싫어하고 괴롭히는 작은 존재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기란 어렵지 않을까?

단지 그 모자에겐 서로를 이해하고 익숙해질 시간이 남들보다 좀더 많이 필요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과연 케빈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자신의 아이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육아에 대한 그런 종류의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맞닿아 있다.

 

모 정신과 선생님은, 이 가정에서는 남편이 틀어진 모자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케빈의 공격성이 엄마만을 향하지 않도록, 다른 구성원들이 분담할 필요가 있었다고.

정말로, 에바가, 남편이, 케빈이,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상황은 좀더 달라졌을까?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해봤자 의미없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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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죽음을 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 by 후지와라 신야

서재

메멘토 모리 - 8점
후지와라 신야 지음, 양억관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요즘은 이래저래 살아 있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똑같지는 않지만, 거대한 프로젝트의 1/100 정도를 매일매일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기분이다.

하루에 그만큼 밖에 못하다니, 내 능력이 이것 뿐인가..하고 의기소침해지다가도

이것밖에 못하게 만든 환경에 불끈 화가 나다가도

돌아갈 곳이나 떠나갈 곳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내가 진정 있어야 할 곳이 있진 않을까..하고.

창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튼, 산다는 건 대체 무엇인지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

이런 삶의 방식이 맞는 건지 계속 고민하던 중에

다시금 이 책을 펼쳐 들었다.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다

문득, 한 구절에 눈길이 머문다.

 

 

 

「이런데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풍경이

   한순간 눈 앞을 스칠 때가 있다.」

 

 

 

소담한 논밭, 야트막한 언덕, 짚으로 얼기설기 이어만든 지붕이 있는 집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황금빛 풍경이 담긴, 사진 위의 한 문장.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른다면,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면 되지 않을까,하고.

 

 

어떤 풍경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어떤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은지

 

 

어쩌면 그것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내 삶의 방향은 쉽게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봤지만

가능하다면 빌딩숲이 아니라 진짜 숲이 있는 곳에서

아늑한, 내 방안 가득히 내리쬐는 따스한 햇빛 속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그런 방식이라면 좋겠다.

 

나의 죽음이 그렇게 기억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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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어느 순간 굴러 떨어진,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by 전민식

서재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6점
전민식 지음/은행나무

 

전화 한 놈이 말은 그렇게 해도

어쩌면 자넬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이건 내 짐작인데

그 녀석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자네뿐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우린 대역이 전문이잖아.

가끔은 돈 안 받고도 일해줄 수도 있지. 안 그래?

 

 그보단 누군가 자네를 향해 손을 내밀 때마다

자꾸 외면하는 건 좋지 않아.

세상에 대해 무뚝뚝해지는 건

사는 것에 권태를 느낀다는 거고,

그건 결국 자신의 목을 죄는 독이기도 해.

 

누가 손을 내밀면, 잡아줘.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만약, 내가 지금 있는 위치에서, 일상에서,

어느 순간의 사건으로 굴러떨어져버린다면?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나는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임도랑이 그랬다.

그가 사랑하던 여자는 사실 산업 스파이였다.

그는 그녀에게 회사의 중요한 비밀을 알려 주었고, 그래서 그녀가 자취를 감춘 후 해고를 당한다.

중요한 기밀을 스파이에게 넘긴 사람을 직원으로 쓰고 싶은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그는 개를 산책시키는 일과, 그릇을 닦는 일을 시작했다.

작은 쪽방에서, 가끔은 대역 알바도 하면서.

 

이 작품 자체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설명조의 문장이 많고, 잇달아 일어나는 사건들은 큰 개연성 없이 투박하게 맞물려있다.

게다가 결말도, 소설의 재미를 이끌어온 소소한 장치들을 한꺼번에 망가뜨리는 식으로 전개된다.

어쩌면 장편 소설이 아니라 옴니버스 식 단편으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순전히 저 위의 대사 때문이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잡아주라는.

'재미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즘은

가끔 멍하니, 언젠가 나를 이 세상에 붙잡아 두는 모든 끈 들을 놓아버릴 날이 올까..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어쩌면, 나는 현실에 묶여 있는게 아니라

세상이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고 표현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임도랑이라는 캐릭터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추락한 케이스에 더 가깝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주위의 사람들을 보는 시선에서는 어색함이나 거북함보다는

왠지 오랜만에 만난 동료를 보는 듯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드디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수 있게 되었다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내가 그의 입장이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문득, 겪어 본 적 없는 지금 과는 다른 일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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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럼에도, 가족일 수 밖에 없는- <디센던트>

재밌는 것/영화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두 딸이 있는 가장이자 잘 나가는 변호사인 그.
하지만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은,
그의 소중한 아내가 식물인간 상태라는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그가 아닌 그녀의 정부와 함께 있다가 닥친 사고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믿기 힘든 사실까지.
만약 이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나 시카고같은 대도시였다면,
영화의 결론은 사뭇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걸 가진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독했던 남자는 외로움에 지쳐 아내와의 영원한 이별을 결심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관객은 끝이 없는 적막감과 회의에 몸부림치는 남자의 결말을 지켜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하와이.
이 영화의 배경은 다행스럽게도 하와이였기에,
문제작이 되기에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 이 영화는 가족 코미디로 성공할 수 있었다.
우울해지거나 슬퍼하기엔 너무나 화창하고 푸르른 하와이의 바다.
슬픈 듯 기쁜 듯, 느릿느릿 읊조리듯 노래하는 음성과 어우러진 우쿨렐레의 선율까지.
그 아름다운 섬에서,
맷과 두 딸은 자신의 아내와,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다투고 서로 힘들어하던 나날을 뒤로 한 채-

삶과 죽음, 풀리지 않는 가족의 문제 등의 묵직한 주제를
'아무래도 좋으니까', '가족이니까' 하고 넘겨버릴 수 있었던 것 그 아름다운 해안의 풍경 덕분일지도 모른다.

맷은 아내를,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물론 그런 시간도 있었겠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쑥스러운, 그런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어쩌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인연으로 묶인 가족 간의 관계는 서로에게 허용하는 '자유'의 범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인생에, 일상의 순간을 상대방이 들어와 간섭하거나 관여할 수 있는 자유.
혹은 관용의 범위가 허락된 만큼이 가족이 가진 인연의 강도가 아닐까..하고 말이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도 몹시도 인간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에, 업무에, 생활에 신경쓰느라 최근엔 내내 잔뜩 곤두서있던 기분이 어쩐지 느긋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
그런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문득 축복처럼 느껴지는 영화. 디센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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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중요한 건, 기적을 바라는 그 마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밌는 것/영화



영화를 보면서 기묘하게도,  Arthur C. Clarke의 말이 떠올랐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였던가.

하지만 구분하기도 어려울만큼 비슷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도 어른과 아이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어른들은 마법같은 사건이 과학 기술의 성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어난 것일거라고.
하지만 아이는 그것이 마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신이나 자연의 특별한 존재가 전능한 힘으로 이뤄낸 일이라고 말이다.
이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은 아직 마법같은 기적을 믿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각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게된 형제, 코이치와 류노스케.
엄마와 함께 외가에서 살게 된 코이치는 어느날 반 친구들이 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새로 생기는 고속 전철이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기적을 꿈꾸는 코이치는 친구들과 함께 전철을 보러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영화 속 아이들의 소원은 정말이지 어린애다운 것도 있고, 나름대로 가슴 아픈 것도 있어서
보는 내내 약간의 저릿함이 느껴졌다.

  가면라이더가 되게 해 주세요.
  마블이 살아나게 해주세요.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세요.
  같은 반 친구를 이기게 해주세요.

어른들은 이미 저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건지, 혹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대부분 알고있다.
혹은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알고 있는 답은 적어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쿠마모토까지 열차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러
먼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현실에서는 기차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본다고 해서 죽은 개가 되살아나는 일 따위는 일어날리가 없지만,
전혀 인과 관계가 없는 두 사건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온 마음을 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일도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는 점이 너무나 아이들다워서 웃음이 나는 한편, 
그렇게 올곧게 바라고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은연중에 확신하는 나 자신에 조금 씁슬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나 자신도 아주 어릴 땐,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하면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길줄 알았는데 말이다.



영화는 집에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기적이 일어났을까?

사실 그런 의문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기적은,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조금쯤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소원 대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는다거나.
기적을 바라던 그 순간에 진심으로 마음에 떠오른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린다거나.

아마도 그런- 생각이나 가치관의 변화와 성숙이
이제부터 아이들의 삶을 찬란하게 꽃피워줄,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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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미디어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 <블랙 미러 Black Mirror>

재밌는 것/드라마


화제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Black Mirror> 
블랙 미러는 컴퓨터나 휴대폰과 같은 전자 기기의 전원을 끈 후에 나타나는  검은 화면을 뜻한다고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기계가 사용자의 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제목대로, 이 드라마는 미디어가, 그리고 미디어를 보는 대중이 미디어에 비춰지는 개인에게  어떤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충격적인 소재와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블랙 미러의 첫번째 에피소드.

새벽에 급한 연락을 받고 잠옷바람으로 달려온 수상은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주의 비디오와 마주한다.
사실 공주는 새벽에 괴한에 의해 납치당한 상태로,괴한의 요구를 알리는 비디오가 수상 앞으로 날아온 것. 
겁에 질린 공주는 덜덜 떨면서 납치범의 요구를 말하는데..그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
즉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공중파로 생방송 중계한다면 공주를 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납치범이 이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렸다는 것이다.
수상이 이 사실을 알게되어 방송 통제를 지시한 순간 이미 영상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상태였고,
영상을 본 모든 사람들이 수상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언론사에서도 결국 보도하기로 결정하고..



범인이 지정한 오후 4시는 점점 가까워만 오는데..


어떻게든 피해보려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공주가 위험에 처한걸 알게되자 여론은 점점 수상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수상 앞에는 돼지 한 마리가 놓이게 되는데..


수상이 납치범의 요구를 이행하고, 풀려난 공주


그리고 1년 후..

수상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건 이후, 수상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가장 상처를 입었을 부인과도 잘 지내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비록 실상은 그들 부부만 알고 있는 것이지만.


 

문제의 납치범. 그는 그 사건이 자신의 예술이었다고 말한다.





소재의 기괴함만 떼어놓고 보면, <블랙 미러>미디어와 대중이 관전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을 카메라가 비추는 대상에 휘두르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집요하게 파헤친 수많은 사건들이 이미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나.
굳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마무리한 케이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 든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를 보면서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정보를 고민없이 '흡수'하고,여과없이 '전달'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에 쥔 정보가 정확한 진실인지, 현실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만 그 정보가 자신의 유흥거리로 삼기에 적절한 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자신은 카메라 밖에서 안전한 이름 없는 대중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산산조각 나는, 영원히 돌이킬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는데 말이다.
미디어가 불러올 또 다른 비극을 피하려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오늘도 액정화면을 가득 메운 셀수 없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고 믿지 않을 것인지, 만약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에 기초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스스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믿으며, 그로 인한 결과를 기억하는 것. 이것이 수많은 군중의 가벼운 여흥이 빚어낼 무서운 참극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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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문제는 사랑, 사랑?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재밌는 것/드라마

「사랑하고 있나요?」하고 물었을 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대 후반, 정도 나이의 여성을 다룬 컨텐츠로는 2011년에 처음으로 본 듯한 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예전에 서플리를 볼 때만큼의 절실함과 우울은 없었지만,
그맘 때의 '연애'를 가벼운 터치로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내게 딱 맞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는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지만, 일단 주역은 아래의 세 명.
사키, 마코, 그리고 후지이. 나이로는 후지이가 가장 연상이다.


이 아가씨는 사키.


주위에는 유명 출판사에 다닌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출판사에 취업하고 싶어하면서 돈을 모으기 위해 클럽에서 일하는 아가씨, 사키.
여기저기서 많이 본 배우인데, 정말 동양적으로 예쁜 외모다!!
근데 그래서 그런지 해피한 여주인공 역할로는 잘 안나오는 듯.
묘하게 호러나 어두운 분위기의 사회파 드라마..같은데 자주 등장한다.
일단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에서는,
여러 남자와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맞추며 만나고는 있지만 실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누구보다 외로움 타는 주제에 강한 척 하는 아가씨로 나온다. 


가장 어린 마코. 이 아가씨도 귀엽다.

마코는 가장 순진무구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로 무지-하게 고민하고,
마음이 있는 선배에게 매일 도시락을 갖다주려 하는 순정파.
건전하고 성실한 연애를 원하지만,
어떻게 걸리는 인연은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
그래서 첫 애인에게 혹독한 꼴을 당하기도 하고.

 

이 아가씨는 후지이. 카리나 너무 이쁘다!!

몇년인가 전에 가장 친한 친구인 유우와 사귀다 2주만에 차인 과거를 가진 후지이. 
그 후로 연애는 귀찮다며 회피해오고 있지만, 유학갔던 유우가 다시 회사 동료로 돌아오면서 흔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이입하기 쉬웠던 캐릭터.  

드라마는 주로 이 세 사람의 사랑과 일-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몇 년정도의 텀은 있겠지만, 
딱 이맘 때의 여자가 할만한 고민을 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꽤나 공감했다.

뭐랄까, 직장에서 나름대로 인정은 받고 있지만 과연 이 직장에서 이대로 괜찮은걸까, 하고 고민할 때도 있고.
사랑하고 싶다,사랑에 빠지고 싶다,가 아니라 연애해야 되는데!!하고 연애가 일종의 일이나  의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영원히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이 남자를, 이 남자의 말을 그냥 덥석 믿어도 되는 건가,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고.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음이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고.
반대로 이 사람을 사랑해선 안되는데, 하고 다짐할수록
자꾸만 그를, 그의 얼굴을, 그의 손짓 하나 하나에 마음이 끌려서 괴로운 시간도 있고.

누구나 한번 쯤은 겪어 보았을법한 그런 시간을 후지이, 마코, 사키를 통해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맞닥뜨렸을 당시와 지금의 감정을 비교해 보는 것도.

 

억지로 셋이 함께 나간 미팅에서 불편해 하는 후지이.

 미팅이나 소개팅은 몇 번인가 해봤지만 전혀! 익숙해 지질 않는다.
익숙해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슬플 것 같지만.



클럽에서 일하는 사키는, 그나마 세 명중 가장 남자와의 접촉이 많고 인기도 있지만
그만큼 더 허전함을 느끼는 중.
하긴, 그저 허울 뿐인 만남을 지속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하다.
그래서 자신을 신사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해준 타쿠미에게 더 매력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는 적어도 예쁜 여자,가 아니라- 사키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즐겁게 생각했으니까.
불륜일지도 모르지만.. 낯선 타인이 자신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신비로운 체험이고, 그게 연애의 장점이니까.


그 와중에 후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우가 거래처의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세 여자.


 


 사실 이 드라마는, 제목과는 달리 많은 연애 지침서처럼 '네가 연애 못하는 이유는 이거야!'하고 콕 찝어서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이제 겨우 스페셜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대의 여성들에게,
정말 연애를 하기만 하면 돼? 네 문제가 연애 밖에 없어? 하고 묻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와서야 제대로 사랑의 조짐같은걸 보이기 시작한 사람은 이중 딱 한명 뿐이니,
 <내가 연애 못하는 이유>는 그냥 연애가 어려워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처음보다 한층 더 밝아보이는 건,
적어도 자신의 길을 찾았다는 기쁨자신이 연애에서 무엇을 구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 그 두가지 때문이 아닐까. 
나도 드라마를 보면서 최근 몇년인가 계속 해오던 생각을 정리하고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다. 
뭐랄까.. 나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은 많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나 자신의 태생적인 결핍, 공허감과 같은 것이
연애를 하기만 하면 전부 사라질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신의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 아니냐고, 불안해하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 자신의 결핍은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것이었기에, 상대방이 그 누구라도 나의 수호천사는 될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아파하는 또래 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만 함께 있었기에 아파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거나, 덜 불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리고 아주 가끔은, 혼자였다면 결코 가질수 없을만큼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는 있었지만,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는 없는 거였다. 
같은, 인간이니까.  

하루키는 어떤 결혼식의 축전에서 이렇게 썼다.
나도 한번 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 라고.

그러니까 연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좋을 때는 아주 좋은 것.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예쁜 드레스나 가방을 선물받고, 최상급 요리를 제공하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런 것도 멋지지만.
새해 첫날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 어찌됐든 분위기를 내볼까, 하고 이러저리 돌아다니다
결국 지쳐서 허름한 골목에 있는 이름도 모를 심야식당 같은 가게에 들어가 소박한 요리를 곁들인 맥주를 한 잔 주문하는 거다.
가게에선 오래된 재즈 같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게 또 의외로 마음에 들고.
으음 뭐랄까, 생각했던 것 같은 반짝반짝하고 멋진 연말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잖아. 아니, 의외로 꽤 괜찮은걸- 하고는 마주보고 웃는, 그런 느낌.
내겐 그런 느낌이 '아주 좋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조금은 두근대는,  1월의 첫날을 맞이하며.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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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IME] 그래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돼지의 왕>

기타 등등
 


*주의* 아래의 내용은 본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학교가 힘들다고는 해도 사실 그렇게 못견딜만한 데는 아니거든요.자기가 밤새서 공부를 하든 돈내고 과외를 받든해서 수업을 따라가면 학점이 그렇게 안나오지는 않았을텐데, 자기가 그걸 못한거죠. 안했거나. 죽은 건 불쌍하긴 한데, 어떻게보면 자업자득인것 같아요."


묘하게도, 등장인물이 중학생 밖에 없는 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을 보면서, 나는 한 대학생의 말을 떠올렸다.
올 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 대학 학생의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결국 약한 건 자기 잘못이고, 나쁜 건 시스템이 아니라 적응하거나 이겨내지 못하는 개인이라는 것.
<돼지의 왕>이 보여주는 모든 비극은, 어쩌면 그런 태도에서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중학교 시절, 종석과 경민은 '선도'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착취가 행해지는 교실에서 권력 위계의 가장 아래층에 위치한 존재였다. 교실의 '관리자'이자 '착취자' 두 명은 툭하면 종석과 경민에게 시비를 걸거나 괴롭혔고, 무언가를 빼앗거나 잔인하게 놀림감으로 만들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종석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런 모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노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취자들 앞에서 웃는 척 하며 얼버무리는 친구 경민과, 뻔히 보이는 그 광경을 못 본체 하거나 약하게 동조하는 반 아이들의 태도였다. 철이의 말에 의하면, 그 들은 '돼지'였다. 어차피 착취자인 개들에게 잡아먹힐 것을 모른 채, 그저  탐욕스럽게 먹이를 받아먹고 살을 찌우는 돼지 말이다. 개들이 주는 먹이는 돼지가 아니라 개들 자신을 위한 것인데 말이다. "돼지로 살고 싶지 않다면, 악해지는 수 밖에 없어." 그래서 철이는 착취자들의 그것과는 성질이 다른,피비린내 날 정도로 날이 선 폭력으로 지금까지의 권력 구조에 혁명을 일으키고, 돼지의 왕이 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 괴물이 되려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 결국 실패하고 만다. 승리는, 어른들의 권력을 그대로 이어 받은 개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종석과 경민은 영원한 돼지로 남았다. ...지금까지도.


누구였더라. 그런 말이 생각난다. 
서슬퍼런 폭력보다도, 부당함에서 고개를 돌리고 입을 다물게 하는게 더 나쁜 형태의 폭력이라고.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감추고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잔혹한 현실을 얼버무리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런 병폐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눈을 감고 모르는 척 하게 만드는 것. 눈 앞에 보이는 권력 앞에 스스로 굴복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모멸감. 그런 감정들에 익숙해지면 인간은, 그렇다. 돼지가 된다. 자신의 살이 뜯어 먹힐 줄도 모르고 개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돼지의 왕>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당신이 안온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혹시 '돼지'로서의 삶은 아니었는지. 
무언가가 '바뀌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철이가 뛰어내린 그날, 사실 준석은 아무도 모르게 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된 지금도 그는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로 근근히 살아가면서, 출판사 사장에게 모욕을 당하고도 참는다. 
돼지의 왕도 역시 돼지일 뿐, 준석은 여전히 지배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혁명은 없었다. 
경민이 죽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오늘과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거다.
그래서 준석은 땅에 엎드린 채 울부짖는다. 너무, 무섭다고.
그것은 어쩌면 그와 비슷한 하루를 또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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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꿈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뮤지컬 <이채>

재밌는 것


 


출처: CJ AZIT 블로그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뮤지컬 <이채>

작.작사 _ 한재은

작곡 _ 임윤선
연출 _ 김동연
음악감독 _ 양주인
출연 _ 임진웅, 성종완, 전재홍, 김민건, 전미도, 김경수
관람일시 : 2011년 7월 26일 (화) 오후 3시


때는 일제 강점기. 
작은 극단의 무명 배우였던 청년은 왕자 '이채'를 모시는 독립군들로부터 어떤 제의를 받는다.
그것은, 왕자 '이채'가 되어 달라는 것.
일견 황당해 보이는 이 제안은 사실 가짜 왕자를 대역으로 세워 진짜 왕자인 '이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청년에게 이를 제안한 나순은 이것이 청년의 꿈인 슈퍼스타이자 일생일대의 배역이 될것이라는 말로 그를 설득하고, 이에 넘어간 청년은 결국 왕자 '이채'의 대역으로 중요한 행사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행사장에서 진짜 왕자 '이채'는 불의의 습격으로 인해 그만 목숨을 잃고, 남은 건 '이채'를 옹립하려던 독립군들과 가짜 왕자 역할을 한 청년 뿐. 하지만, 독립 운동 자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꼭 진짜 왕자 '이채'가 필요했기에 청년은 조금 더 독립군들과 함께 왕자 '이채'로 살아가기로 한다. 

  

위와 같은 배경 설명만 놓고 이 뮤지컬을 판단한다면 어떨까?
아마, <영웅>과 같은 민족 대 서사시와 같은 내용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일제의 탄압과 민족의 비극, 의사 안중근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과 같이 극적이고 강렬한 사건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많은 극과 드라마에서는 영웅시 되는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그가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영웅적 행위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관객이 일제에 대한 분노와 주인공에 대한 경외, 그리고 벅차오르는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곤 했다. 그러나- 뮤지컬 <이채>는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많은 극적 배경과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그저 꿈많은 청년으로 살고 있었던 가짜왕자 '이채'를 내세워 역사적 관점보다는 개인적 관점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이전의 많은 '영웅적' 일대기에서 감동과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느낀 내가 모처럼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가짜 '이채'역의 김경수 배우님 (출처: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이 뮤지컬 <이채>가 가지는 수많은 장점 중에서, 나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칫 무겁고 심각해지기 쉬운 소재이고,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책임감을 가진 '배일'이나 가짜 '이채'의 유혹자이자 일본 경찰의 스파이로 등장하는 케이타와 같은 등장인물들은 동일한 소재를 다룬 기존의 극에서도 있었을 법한,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가짜 왕자 '이채'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가짜 왕자 이채를 맡은 청년의 본명은 극 내내 나오지 않는다. 그는 계속 가짜 '이채'이다.) 그는 단지 꿈을 가진 젊은이였고, 어쩌다 독립군의 활동에 협력하게 된 후에도 최초의 순수함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의 쾌활함과 순수함은 그가 자신이 '가짜' 왕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그저 자신의 연극이고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그는 시종일관- 심지어 진짜 왕자 '이채'의 죽음 앞에서도 다소 가볍고 경박하기까지 한 천진난만함을 보인다. 덕분에 사랑도 싹트고 말이다 .. -_-  신기한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붕 떠있어야 할 것 같은 청년의 캐릭터가 극 안에서는 다른 인물들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사실 밝고 건강하고 순수한 청년의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전형적'이다. 청춘 소설이나 만화에 나올법한 열혈 바보 캐릭터의 몇 가지 특징을 이어받은 청년은 극의 전반부에서는 주로 웃거나 떠드느라 바쁘고, 다른 인물들은 청년을 견제, 혹은 이용하거나 사랑하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무거운 시대 배경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가짜 '이채'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전반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부. 
결과적으로 가짜 왕자 '이채'는 조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마지막에서야 진정한 '왕자' 이자 '영웅' 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는 결말.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민족의 영웅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내 안의 가짜 '이채'는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착한 청년 정도일까. 그저 그가 일생 일대의 배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진심으로 감탄해주는 관객 한 사람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채'역을 연기하는 '배우'였을 뿐, 왕자도 영웅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엾다. 그의 죽음이. 그리고 실제의 그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그의 짧은 삶이. 그렇게 뮤지컬 <이채>는 끝을 맺는다. 

 높은 몰입도와 적절한 유머, 빠른 템포의 전개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청년이 이채의 대역을 수락한 이유가 그 후에 계속되는 위기에서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만큼의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청년은 모두가 선망하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슈퍼스타'가 되려면, 관객이 청년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터인데, 가짜 '이채'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역할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것이 일생일대의 배역이라는 역할을 이유로 승락하는데, 이 부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모든 일이 성공한 후에 너의 정체를 밝히고 널리 알리겠다'거나 '이 후에 대극장의 주연 배우 자리를 확보해 주겠다' 는 식의 관련된 인센티브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연기에 대한 집념이나 열정이 거의 표현되지 않아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은 그저 철없는 희망사항으로만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또한, 아무리 시대와 상관없이 꿈만 쫓아 사는 청년이라 해도 빼앗긴 조국의 정통 왕자의 대역인데, 역사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이 덥석 받아들이는 것도 어색해 보인다. 물론, 스토리 상에서는 청년이 가짜 왕자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는 매우 빨리 지나가고 그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90% 이기 때문에 다소 빈약해도 큰 흠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진짜 왕자가 죽었는데도 죄책감이나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자신이 계속 가짜 왕자 역할을 하겠다고 해맑게 주장하는 청년을 보면 좀 심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

   

이러한 몇 가지 개인적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즐겁고, 때때로 유쾌하고, 마지막 여운도 길었던 뮤지컬 <이채>.
리딩 공연의 한계 상 많은 부분을 건너뛴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극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정식 상연할 때에는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급박한 장면들과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관계 변화까지 충분히 짚어줄 수 있는, 풍성한 무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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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AZIT 블로그의 <이채> 예고 포스팅 :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뮤지컬 <이채> 리딩 공연 영상들 :
http://blog.naver.com/dr_cheese/100137627746
http://blog.naver.com/dr_cheese/10013766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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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도,로맨스는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

재밌는 것/영화


 
얼마 전, TV에서 프랑스의 아주 작고 오래된 시골 마을을 보았다.
그 마을은 정말이지 작아서 많아야 200명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고, 몇 백년 씩 된 건물들은 그 오랜 세월동안 몇번의 페인트칠과 수리만 더했을 뿐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그 안에 몇 대째인지 모를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그 곳은 작은 대장간이 있고, 농장이 있고, 의사는 없지만 간호사와 시인, 화가의 집과 플로리스트의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치 동화같은 마을이었다. 나와 부모님은 그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바라보며 저런 곳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고, 나름 있을 것도 다 있으니 불편하지도 않을 거고,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막상 그런 기회가 생기면 가족 중 아무도 거기서 살겠다고 나서진 않을테지만.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너무 아름답지만 결코 내 것이 될수 없는 것에 대한 거리감 같은 것. 손 닿을 곳에 있어도 손을 뻗지 않을, 그런 찬란함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의 주인공 프란시스 메이어스에게도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그런 존재였다.

어느 날 갑자기 순조로운 줄만 알았던 결혼 생활이 남편의 외도로 막을 내리고, 친구 패티의 권유로 도망치듯 떠난 이탈리아 여행.
그곳에서 프란시스는 알 수 없는 어떤 운명 같은 것에 이끌려 '브라마솔레' 라는 낡은 저택을 사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낡고 여기저기 부서진 '브라마솔레'가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로- 친구들이 모이고 결혼식이 열리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그런 집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주인공 프란시스의 인간적인 성숙 및 치유과정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살던 예전 집에서 책 상자만 두어 개 챙겨 도망치듯 떠나온 파리한 안색의 이혼녀는, 영화의 마지막에선 사람들의 떠들석한 웃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의 태양 아래에서 누구보다도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만약 "이탈리아 시골마을이라니, 낭만적이긴 하지만 내가 거기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 라고 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들.

그런데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단순히 프란시스의 일탈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고 행복해졌다-는 식의 전개로 이끌어 나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브라마솔레로 막 이사했을 때 프란시스의 심정은 '카오스' 그 자체였었으리라. 너무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정원에, 거미줄에, 고장난 수도꼭지까지. 아마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살겠다고 했을까?' 라는 후회를 몇백번은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프란시스를 좋게 본 부동산 중개업자의 소개로 폴란드 출신 인부들이 저택을 수리하러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그녀의 삶은 아주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 청년과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폴란드인 남자애의 연애를 몰래 도와주기도 하면서 예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혹은 할 기회가 없었을 일들에 부딪히게 되면서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프란시스. 음울하기 그지 없었던 '브라마솔레'가 산뜻하게 단장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아름다운 커플의 결혼식이 치뤄지는 마지막 장면은 결국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던 프란시스의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스카니의 태양>의 가장 큰 테마는 상처입은  한 여자가 다시 자신의 빛깔을 되찾는 일종의 성장기, 또는 치유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야 그녀의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이 영화가 '새로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평생을 함께할거라 믿었던 배우자의 배신이 준 깊은 상처와 공허감을 안겨준다고 해서 한 사람의 삶이 반드시 망가지리라는 법은 없다고, 어떤 헤어짐으로 인해 열리는 다른 세계도 있다고, 한 세계에서 얻은 상처에 대한 치료약은 다른 세계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이젠 정말 끝' 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것도 있다고, 내가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정말 저런 곳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아, 라는 찬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눈부신 이탈리아의 풍경은 덤.
이 가을, 약간은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줄만한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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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기나긴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하는 순간, <7년의 밤> by 정유정

서재
7년의 밤 - 10점
정유정 지음/은행나무


"내 아버지는 살인자입니다."

라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청명하게 울려퍼지는 그 목소리는, 그의 아버지가 일가족 4명이 즉사한 교통 사고의 가해자였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엄청난 배상금을 지불해야했고, 그래서 술에 젖어 지내던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목을 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직 어렸던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죄책감'이라는게 무엇인지 아주 오랫동안 궁금해했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아버지는 살인자이기 때문에, 남들 앞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해 쉬이 슬퍼할 수 없다는 것만은 알았다고.
 

'서원'과 함께 지새던-그 오랜<7년의 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나는 기억 어딘가에 묻어둔 그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휴대전화를 접어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무릎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세상은 '지난 밤' 일을 '세령호의 재앙' 이라 기록했다. 아버지에게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를 '그의 아들' 이라 불렀다. 그때 나는 열 두살이었다.                                                                        
 -p8


모든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들 외의 사람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섣불리 슬퍼할 수도, 애도할 수도 없는 가해자의 유족들. 혹은, 불의의 사고로- 정말 '운명이 느닷없이 변화구를 던진 날'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하여. 누구나 그들에 대해 떠들어대지만 정작 아무도 알지는 못한다.
불합리 하지 않은가. 당사자들이 아닌 다음에야 어차피 '남의 일'일 텐데, 그저 타인일 뿐인 사람들이 추측하고, 이야기하고, 단정짓고 비난하거나 동정한다는 것이. 자신이 겪고있는 상처와 고통이 단지 '타인의 일'일 뿐인 다른 누군가의 유흥거리나 재밋거리가 되어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을만한 너덜한 누더기가 될 때까지 치여야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그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힘겨운 나날이 계속 되고 있는데, 이야기 한번 나눠보지 않고 멋대로 자신의 아픔을 재단하고, 그에 따라 내키는대로 동정하거나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있는 현실이 어떨지,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최현수와 최서원이 바로 그랬다. 영원히 지속될것만 같은 지옥 속에서 보낸, 기나긴 밤. 


그 아이는 어디서든, 무시로 튀어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의 모습이, "아빠"라고 부르던 목소리가, 왼손 밑에서 버둥거리던 몸부림의 감촉이, 누가 그 일을 저질렀는지 일깨우는 일은 매일 매순간 일어나고 있었다. 각성의 순간에는 미칠것 같고, 미칠것 같은 순간이 지나면 망연자실의 순간이 찾아 들었다. 그 순간은 공포의 다른 이름이었다. 자신에 대한. 미래에 대한, 앞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데 대한, 부서진 삶을 다시는 복원할 수 없다는 데 대한 공포.
(..)

옳지 않았다. 공평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쥐 한마리 죽여본 적이 없었다. 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간 적도 없고, 독 묻은 혀로  남의 등골을 빨아 먹은 적도 없었다. 거창한 소망을 바란 적도 없었다. 가족에게 세 끼 밥을 먹이고, 아들을 키우고, 내키면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딱 지금만큼의 행운을 바랐다. 그것이 그리도 주제넘은 바람이었더냐.
두려움 밑에서 깜박대던 분노가 불길로 타올라 소녀에게 옮겨붙었다. 대체 너는 누구더냐. 죽고 싶었다면 호수로 뛰어들었어야한다. 죽을 힘을 다해 버둥거린 끝에 유리공 하나를 손에 쥔 남자의 차가 아니고.                    -p121 



작가는 이 작품이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할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는 온전히 한 쪽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나'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으며, 따라서 불편하고 혼란스러워도 우리가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라고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리고'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변화구가 던져진 다음, 체인지 후 다음 회에서, '그리고' 처음으로 마운드 위에 선 신인 투수 최서원과, 명포수 최현수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평생 2군일줄만 알았던 남자가,그저 운명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하는 것 처럼 보였던 한 남자가 마침내 승리한, 그런 이야기라고. 
느닷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값이지만, 그건 아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수식에 의하면 매우 당연한 '그리고'일거라고.
그런 '그리고'가 인간에게 드리운, 길고 짙은 어둠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라고.
빛도 어둠도 없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만 계속 이어지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밤이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너무- 크고-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 했지만. 



가만히 눈을 감는다.
빠져나오겠다는 생각마저 접게 만드는, 그 아득한 어둠과 고요를 상상한다. 

세령호의 짙은 물안개 속에 둘러싸인 한 마을을 생각한다. 
아직 작은 소년과 그의 아버지. 가늘고 새하얗던 소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얽히기 시작한 그들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장면을 엿본다.
탄식한다. 


'그리고' 어둠의 끝, 저 멀리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빛을 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걸음, 앞을 향해 발을 디뎠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시 한 발짝.
나아갈수록 소리는 멀어졌다. 어둠은 차차 옅어졌다. 
마침내 환해졌다. 그 아이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어쩌면 상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허공을 디디며 하늘 저편으로 멀어지는 그 아이의 흰 종아리를 보았다. 그 아이가 남긴 희미한 발자국 위로 잿빛 오후가 밀려왔다. 세상의 초침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째깍...
아저씨의 봉고가 내 곁에 와서 섰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고 길었던 밤이 빛의 바다로 침몰하고 있었다.                                                        -p517



      7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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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결말, <소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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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 리뷰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카고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깨어난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당신의 말을 듣기로 했어요. 좋은 조언이었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그는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션 펜트리스라는 교사가 아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콜터 스티븐스 대위. 그는 중동에서 작전을 수행중이던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그리고 황망하게 주위를 살피던 중, 열차는 폭발하고 콜터 대위는 어떤 어둡고 추운 캡슐 안에서 다시 눈을 뜨는데.. 캡슐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는 작은 스크린을 통해 지시를 내리는 여성 오퍼레이터 굿윈 뿐. 그녀는 끔찍한 열차 폭발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앞으로 6시간 후에는 시카고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콜터에게 주어진 임무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 열차의 상황으로 돌아가 '열차에 설치된 폭탄의 위치와 폭탄범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결말에 SF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인셉션과 자주 비교가 되고 있는 소스코드. 그러나 나는, 복잡하긴 하지만 애초에 영화 내에서 구축된 설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알기 쉬웠던 인셉션과는 달리 '고도의 양자역학' 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소스코드의 결말을 도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1) 다른 사람의 기억에 접속한다. 2)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는 이 두 가지 현상을 다중우주론 안에서 설명이 가능한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스코드'가 어떤 기술인지 알 필요가 있다.

'소스코드'를 만든 러틀리지 박사는 그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 사람은 죽은 후에도 죽기 전의 8분의 기억을 잠시 유지할 수 있다. 
-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는 수많은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
- 따라서 우리는 션 펜트리스라는 인간이 아직 죽지않은 시공간으로 너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대충 '그것은 매우 고도의 양자역학이라..' 며 넘어갔지만, 이미 '기억'이라는 개념이 '평행우주'라는 개념과 합치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인간의 기억은 이미 그 시점에서 경험한 고정된 현실에 대한 개인적 기록인데, (아무리 기억이 가변적이라고는 하나 외부적 암시나 왜곡 요소가 없는 이상 자동적으로 전혀 존재한 적 없는 사실에 대해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다.) 콜터가 션 펜트리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콜터 자신의 행동에 의해 주위 환경과 인물들의 대응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단기 기억이 죽은 후에도 얼마간 유지된다는 설정이 사실이라면 이미 같은 우주 안에서 8분의 시간이 여러 번 지난 시점- 대충 한 시간 넘게 지났다고 치자- 라면 더이상 션 펜트리스의 기억에 접속할 수 없어야만 말이 된다. 어차피 이미 8분이라는 시간은 심리학에서는 장기 기억의 영역으로 다루거니와, 같은 우주 안에서 이전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시간 여행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스코드가 결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고 단언한다. 이 모든 팩트를 끼워맞추려면? 1) 소스코드 안은 누군가의 기억 속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가상세계이다. 2) 콜터는 굿윈 등의 조작에 의해 그 가상세계(소스코드) 안에서 그와 가장 상성이 잘 맞는 개체인 '션 펜트리스' 안으로 의식을 '전이', 혹은 오컬트식으로 말하면 '빙의' 할 수 있다. 3) '션 펜트리스'는 소스 코드 안에서 다른 세계의 인간의 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샤먼'같은 매개체 역할만 수행한다- 고 본다면 대충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단 위키백과에서 찾아본 다중 우주론의 핵심은 아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발생한 사건과 조건에 의해 갈래가 나뉘어 무한한 수의 평행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
② 평행한 다른 우주는 우리 우주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즉, 한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른 우주와 무관하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또다른 평행우주든 가상세계인 소스코드든 그 안에서의 사건이 현재 콜터가 소스코드에서의 사망 후 계속 되돌아오고 있는 우주(귀환우주)에는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 장면과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한번 생각해 보자.

- 러틀리지 박사는 "오늘 아침에 열차 테러 미수가 있었다" 는 보고를 받고 있다.
     → 박사가 콜터를 소스코드로 보내 테러를 막은것이 아니다.
- 콜터를 소스코드로 다시 보내고, 생명 유지 장치를 멈춘 굿윈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했다. 
     → 굿윈은 콜터를 소스 코드로 다시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막 출근했기 때문에, 그 열차 안의 상황으로 콜터를 보낸 적도 없다고 볼 수 있다.  
- 굿윈에게 콜터의 문자가 도착한다.
     → 영화초반부에 러틀리지 박사는 '소스 코드 안에서 전화를 걸면,그 안의 또 다른 러틀리지 박사가 전화를 받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굿윈이 문자를 받은 세계와 콜터가 문자를 보낸 세계는 동일하다는 말이 된다.

갑자기 닥친 어리둥절한 이 상황이 대체 왜 발생했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소스코드는 러틀리지 박사가 생각한 것처럼 고정된 데이터화된 세계가 아니라, 관찰자(콜터)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또 다른 평행우주에 더 가깝다. 그래서 관찰자가 현실에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개그맨에게 내기를 건다던지, 크리스티나를 구한다던지..) 그 시점에서 콜터가 있는 우주에서는 또 다른 평행우주가 많은 갈래로 계속 펼쳐지게 된다. 귀환 우주(소스코드에서의 죽음 후 콜터가 돌아가는 우주)에서 파견 우주 (테러가 일어나기 8분전의 우주)는 항상 시점만 동일할 뿐, 콜터가 도착하는 순간 다른 평행 우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귀환 우주에서의 콜터의 미션을 생각해보자. 때는 이미 열차 테러는 일어나고 6시간 후로 예고된 시카고의 방사능 테러를 막아야 하는 시점. 콜터의 미션은 열차로 돌아가 폭발물의 위치와 폭파범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견 우주에서 콜터는 열차 테러를 '막았다.' 따라서 콜터가 열차 테러를 막은 시점에서 열차 테러가 이미 일어났었던 귀환 우주는 소멸하고, 파견 우주를 비롯한 그 외의 평행 우주만 남는다. 귀환 우주에서의 굿윈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마지막 결말은, '션 펜트리스'라는 교사가 열차 테러를 막고 경찰에 신고해서 폭파범을 체포하고 크리스티나와 공원의 조형물을 보러간 파견 우주에 존재하는 굿윈이 문자를 받은 상황을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 파견 우주에서, 보고를 받은 러틀리지 박사는 왜 다른 부하에게 "그녀를 잘 감시해"라고 했는가.
    (굿윈이 명령을 어긴 사실을 알고 있다?)
▷ 콜터가 두 개의 우주를 넘나들 때마다 보이는 공원의 조형물과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무슨 의미인가.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션 펜트리스의 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다른 우주의 존재가 또 다른 우주의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이 외에도 전공자도 아닌 (단순한 SF 애호가;) 인 내가 생각한 위의 미흡한 설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있을법 하지만,
일단 설정 자체가 영화에서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개인적인 의문만 제외하고 아무 생각없이 보면 제법 재밌게 즐길 수 있을만한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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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다는 것, <언더커런트 Undercurrent> by 토요다 테츠야

기타 등등
언더커런트 - 10점
토요다 테츠야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저기, 죄송한데요. 만약 야마자키 씨에게 오랫동안 함께 지낸 여성이 있는데, 그 사람 곁에서 말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역시 그 여성이 원인일까요?
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설명하는 것 조차 포기하고 그냥 떠날까요?"

"어렵군요. 하지만 제가 만약 상대 여성에게 원인이 있어서 헤어진다면, 헤어지기 전에 그 얘기를 몇번이고 입이 닳도록 할겁니다.
말없이 사라지는 건 유치한 나르시시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혹은 그 여성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어서 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경우..
그런 경우라면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죠.
그리고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다른 여성에게로 달아난 경우인데, 이건 상대가 금방 알게돼요.
뭐, 사실 이런 가정적인 얘기는 별 의미가 없죠.
바닥이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쌓아올려봤자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남편 분은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다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말주변도 없고 제대로 전할 자신도 없어
계속 그런 무력감에 빠져 지내다 전부 내던져버리고 싶어져서 뛰쳐나갔다..뭐, 이것도 가정이지만요.

결국 알지 못하는 걸 아무리 이것저것 생각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아는 것은 조만간 알게 되겠죠.



어떤 대학 교수의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순간 그의 뒤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특히, 그의 부인을.
자신의 남편이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자살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는 왜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금 당장 끝내기로 결정했을까.
그리고 왜...결정을 내리기전에, 자신의 동반자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자신이 자신의 삶에 끌어들인, 그리고 자신이 개입한 삶의 주인을 목숨을 끊는 그 순간까지 단, 한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걸까.
자신의 죽음 뒤에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누구보다도 가까워야할 사람인데, 평생을 함께하자고 약속했던 남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음을 택하다니.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나요?
무슨 의미가 있긴 했나요?
유서를 쓰려고 마음 먹기 전에, 왜, 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나요.
나는 그저 당신 인생의 장식품이었을 뿐인가요.
왜 내가 당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도 않고, 그저, 떠나버린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보낸 희미한 사인을 내가 내 삶에 지쳐있었기에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건가요.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선택은, 내 탓인가요.

이렇게 아무리 자책을 하고 상대방을 원망해봤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돌아오지 않는다. 대답없는 질문 속에서 서서히 지쳐간다.
평생이라던 굳건한 맹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 때문에 깨져버리고,
배신당했다는 원망과 슬픔, 그리고 상처는 잠시 가리워질지언정 홀로 견뎌내야할 고통스러운 시간 없이는 가라앉거나 치유되지 않는다.

내가 이 책, <언더커런트> 에서 본 모습은 바로 그런 거였다.
어느 날, 아무 말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린 남편과 '남겨져버린' 아내, 카나에.
작품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지만, 그건 그저 '대답'을 듣기 위한 만남이었다. 떠난 본인의 입으로.

"우리, 좀더 일찍 이런 얘길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래, 만약 그가 떠나기 전에 카나에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많은 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는 구원을 얻고, 카나에는 예전과 똑같이 씩씩하게 목욕탕을 꾸려나갔겠지.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오래도록 함께 했겠지. 만약 그랬더라면.
하지만 그는 말없이 떠나는 편을 택했고,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서로가 있었던 일상을 추억으로만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상대방을 안다는 게 뭘까.
당신의 곁에 있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부모가 없는 사람끼리라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는 둥, 그런 말을 하곤 했거든."

"그런데 있잖아..제일 괴로운 게 뭐냐면...
어쩌면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제일 괴로워."


이 작품을 읽고, 아주 오랫동안- 많이,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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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결여인간,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 탄생한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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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백>.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오프닝.
좁은 교실안에서 13살짜리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야유하는 가운데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 없이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교사 모리구치 유코는 문득, 한 마디 던진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그녀의 말은 전혀 고백같지 않았다. 고백이란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실상 그녀는 학생들 중 아무도 보고있지 않았고, 누군가가 들어주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복수를 하고있었다. 일견 평온해보이는표정 안에 미칠듯한 격정과 분노와 슬픔을 가둔 채. <유명해지고 싶어서>라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자신의 어리고 약한 딸이 목숨을 잃어야 했었나. 하지만 영화가 계속 되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일렁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직접 소년 A, B에게 벌을 가하지도 않는다. 살인자로 낙인 찍힌 두 소년에게 학교가,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가하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이었다. 사실- 소년 A와 B가 사이코패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따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타인의 고통에 둔감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걸 모두 제쳐두고라도 영화에 나타난  두 소년이 전혀 '낯설지 않음'에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다.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창조성이 빈약하다거나 아이디어가 진부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상상할 수 없다. 자신으로 인해 만약 참극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그 상실과 상처가 가져오는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슈야와 나오키는 마나미의 죽음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행동이 '살인'이라는 것. 한 소녀가 죽으면, 그 어머니가 지독하게 슬퍼하리라는 것 따위는 모른다. 그들이 관심있어 하는 건 오직 자신에 대한 것-자신의 어머니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내가 이 녀석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 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면 미즈키가 슈야를 구원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사랑을 믿게하고,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만들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학원 드라마같은 진부한 엔딩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기우였다. 슈야가 미즈키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살해한 어떤 대학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비록 살의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슈야와 학생들의 결정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타인이, 혹은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그 타인이 부모님일수도, 친구나 동료일수도, 혹은 세상의 시선일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기준으로 삼을만한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어진 길은 하나 뿐이었다. 공부하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 사실 각오하고 뛰어든다면 가능한 길은 더 있었겠지만,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성과' 였다. 불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질적으로 졸업한 대학에 의해 사회 서열이 갈리고, 연봉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네 꿈을 펼쳐라" 라고 한들 누가 순순히 따를 수 있겠는가. 어떤 꿈을 꾸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말은 마치 '개성있는 인재'를 원한다는 기업의 표어처럼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돈이 되지 않는, 아무도 사주지 않는 꿈을 꾸는 자의 종말은 어쩌면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걸-불행히도, 우리는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준 미달'이라는 선고가 생존 위협으로 직결되는 사회에 살고있다. 그래서 "누구도 내게 동물을 죽이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는 슈야의 독백은, 충격적이지만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벌어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 또한 원한다. 그래서 현재 학교 교육의 대부분은 부모가 원하는 이러한 인생루트에 자신이 담당한 학생이 순조롭게 편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원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에게는 똑같은 길이 주어지고, 가장 이상적인 삶의 표본을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 이라는 인성은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평가할 수 없다. 평가할 수 없으면 보여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고. 따라서, 모든 학습과 교육은 '보이는 것'을 우선으로 정렬된다. 학생은 물론, 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학생의 '성적'으로 평가받는 이상 성적이 아닌 모든 요소는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효율적'인 성적 향상을 위해 모든 자원은 수치화 할 수 있는 척도를 상승시키는 데 투입된다.이렇게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에만 점점 능숙해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열심히 말을 한다.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말이란 것이 항상 진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괴리. 그리고 '보이는 세계'에 사는 결여인간. 나오키와 슈야는 그 곳에서 탄생한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들이 '괴물'로도 느껴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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