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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영혼이 없어도, 아름다운 날들이면 되잖아? <나를 보내지 마> by 가즈오 이시구로

서재

나를 보내지 마 - 10점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민음사



담담한 슬픔, 서정적인 풍경-
작품을 평하는 몇 마디의 수사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이 작품.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면 순수한 소년 소녀들의 평범한 성장 소설로 볼 수 있을 법한 내용이지만,
캐시와 루스, 토미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 소설 이상의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배경은 1990년대 후반 영국.
주인공들은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기숙학교인 <헤일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좋은 선생님이 있고, 친구들과 선후배가 있고, 매일 수업을 듣고 각자의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는 점에서는 다른 학교와 다를 바가 없지만, 외부와의 접촉이 일절 차단되어 있다는 면에서는 조금 특별한 학교이다. 주인공은 이 헤일셤에 있는 캐시와 루스,토미.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소녀였던 캐시의 시점을 따라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다보면 나의 청소년기에도 있었던 일들- 친한 친구와의 묘한 알력 관계와 멋진 남자애를 둘러싼 갈등,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애지중지하던 물건과 동경하던 선생님과 얽힌 에피소드 -과 그녀의 일상이 너무도 닮아 있어 나보다 어린, 작은 여동생을 보는 것 같은 평온한 기분이 든다. 다만, 딱 한 가지 사실만 빼고.

어쩌면 '생리'와도 비슷할 지 모른다, 는 생각을 했다. 
어떤 날,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해 어른에게 이야기하면, 이런 말을 듣는거지. 그건 말야, 누구나 겪는 거란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야. 앞으로 계속 , 한달에 한번씩 이런 일을 겪게 될거야- 하고. 그럼 나는, 생각하는 거지. 아. 그렇구나. 한달에 한번이라니 귀찮은데-
그러니까 그 전에도 어렴풋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또래끼리는 쉬쉬하거나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런 사건.
딱히 항의 할 수도 저항 할 수도 없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 
헤일셤의 학생들에게는 <장기 기증>이란 그들의 미래가 그런 것이었을 지 모른다.

"너희는 사태가 어떻게 될건지 듣기는 했지만, 아무도 진짜 분명하게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감히 말하건대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데 무천 만족해하는 이들도 있지.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당연히 필요한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해. 너희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성인이 되면, 심지어는 중년이 되기 전에 장기 기증을 시작하게 된다. 그거야말로 너희 각자가 태어난 이유지. 너희는 비디오에 나오는 배우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야. 나와도 다른 존재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없이 미래가 정해져있지. 너희는 얼마 안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p 118- 119



다소 애매한 단어로 채워져 있지만, 그렇다. 헤일셤의 교사들이 '학생들' 이라고 부르는 캐시와 같은 존재들은 장기 기증을 목적으로 태어난 클론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헤일셤을 졸업하고 나면 간병사로 일하게 되고, 그러다 장기 기증을 하라는 통지서를 받는 순간부터는 장기 기증자가 된다. 그들은 네 번까지 장기 기증을 견디면 굉장히 잘 된 케이스라고 말하지만, 사실 장기를 떼어내는 수술 중이나 후에 사망한 다음에도 그들의 장기는 사체로부터 누군가에게 이식될 운명이다.
'한 사람도 예외없이' 정해진 미래를 본 순간, 나는 어찌해야할 지 잘 알수 없는 그런 종류의-가슴 깊은 곳에서 서서히 차올라 투명하게 일렁이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이 '슬픔'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나는 단순히 정의하기는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분명, 슬프고 안타깝다.
많은 독자들은 이렇게 썼다. '마음껏 꿈꿀 수 없어서' '어린 나이에 죽어야 하니까' '미래가 정해져 있어서' 캐시와 루스, 토미가 가엾다고.
하지만 몇 가지 생물적, 사회적 요소를 배제하고 나면 그들의 미래는 우리들의 미래와,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처럼 보인다.
 

꿈꾸는 대로 마음껏 살 수 없는 젊은이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고.
학벌 때문에, 집안 때문에, 경제력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은 산처럼 쌓여있고.
좋은 고등학교 가서,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좋은 배우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우리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선 나와 비슷한, 혹은 어린 친구들이 생에 작별을 고하고 있을테고.  

그런 의미에서, 학창시절이나마 훌륭한 선생님과 친구들 곁에서 나름대로 '행복했던' 헤일셤의 학생들이, 교사가 말하는 보통 '인간'보다 훨씬 더, 불운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시한부를 선고받은 환자와 장기기증을 위해 태어난 클론, 각각에 대한 내 슬픔의 종류와 깊이가 다른 건 왜일까? 

그건 아마  헤일셤의 누구도 '저항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외부에 있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너무도 불합리한 일.
타인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몸에 있는 장기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행사하는 이 현실에 대해 캐시와 토미는 물론 단호한 성격의 루스까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냥,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자신들 뿐 아니라 같이 있는 모든 학생들이 다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니까. 
헤일셤 학생들이 집행 연기라는 일종의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소문 때문에 코티지에서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말 그래도 '연기'일 뿐이니까 말이다. 만약 그들 중에 하나라도 집행을 면제 받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읽는 동안 '클론','장기기증자' 라는 면에서 만화 <월광천녀>도 잠시 떠올렸는데, 살기 위해 싸우는 카부치 섬의 도너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아닌가. 자신들도 인간이고,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클론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할 수는 없다며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클론'이니까, '클론'의 삶을 수용하는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 또한 그들의 삶과 완전히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