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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것'에 해당되는 글 99건

  1. [MOVIE] 호러와 드라마 사이 어딘가, '라이트 아웃 lights out'
  2. [MOVIE] 곡성, 이동진의 끝장평론 무비딥 '곡성'편 (2)
  3. [MOVIE]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 <러덜리스 Rudderless>
  4. [MOVIE] 헐리우드의 중심에서 원스, 어게인을 외치다 <비긴 어게인>
  5. [MOVIE] 진실과 거짓, 그 무의미한 경계 <사이비> (2)
  6. [MOVIE]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말하는 건축가> (2)
  7. [MOVIE] 천국도 지옥도 오직 열차 안에- <설국열차>
  8. [MOVIE]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man>
  9. [MOVIE] 모성애란 뭘까? <늑대아이> (2)
  10. [MOVIE]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케빈에 대하여>
  11. [MOVIE] 그럼에도, 가족일 수 밖에 없는- <디센던트> (1)
  12. [MOVIE] 중요한 건, 기적을 바라는 그 마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13. [DRAMA] 미디어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 <블랙 미러 Black Mirror>
  14. [DRAMA] 문제는 사랑, 사랑?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2)
  15. [MUSICAL] 꿈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뮤지컬 <이채>
  16. [MOVIE]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도,로맨스는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 (2)
  17. [MOVIE] 9/11 테러의 진실은 무엇인가? <Loose Change 9/11>
  18. [MOVIE]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결말, <소스코드> (21)
  19. [MOVIE] 결여인간,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 탄생한다 <고백>
  20. [MUSICAL] 배우가 연기, 노래는 물론 직접 악기까지 연주한다? 뮤지컬 <모비딕>
  21. [DRAMA] 좋은 아내의 조건이란? <the GOOD WIFE>
  22. [MOVIE] 눈부신 청춘의 댓가는 정말 아픔 뿐일까- <소라닌 ソラニン> (2)
  23. [EXHIBITION] 영국 근대회화전 . 예술의 전당 (2010.8.12) (4)
  24. [MOVIE] 한 사람의 신념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4)
  25. [MUSICAL] 헤매고 있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뮤지컬 <싱글즈> (5)
  26. [MOVIE] 영화보다 감동적인 실화, <맨발의 꿈> (2)
  27. [MUSICAL] 모두가 미쳐버린 세상, 뮤지컬 <Jazz 루나틱>
  28. [MOVIE] 그들이 꾸는 꿈의 가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
  29. [MOVIE]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걸어도 걸어도 步いても 步いても> (4)
  30. [MOVIE] 스타트라인에 선 세 사람, <제로 포커스 ゼロの焦点> (6)

[MOVIE] 호러와 드라마 사이 어딘가, '라이트 아웃 lights out'

재밌는 것/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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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장르로서의 '호러'를 좋아해왔던 것 같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던 '공포특급'부터 시작해서 가장 최근에 본 '케빈 인 더 우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있어 '호러'란 직접적인 위험 없이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치트키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있으면 보고 즐기는 정도의 수준이었기에, 그 장르에 대해 깊이 분석하거나 고찰해 본 적은 없었는데.


영화 [라이트 아웃]을 보고,

내가 그간 호러의 어떤 '코드'를 좋아했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괴담'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인지, 나의 호러 취향은 꽤 전형적인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학교 괴담.

그 중에서도 모나리자의 눈이 움직인다던지, 인체모형이 뛰어다닌다던지 하는 류의 '친숙한 사물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혹은 빨간 마스크나 홍콩 할매 귀신처럼, 잘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지만 언뜻 그럴 듯 해 보이는 인물이 주인공인 괴담들. 


영화로는 '이블 데드''엑소시스트', '링' 정도를 꽤 무섭게 본 것 같다.

특히 '링'은 그후 나의 취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깊은 원한이 어떤 매개체(비디오)로 전파되어 '불특정 다수'가 비극을 맞이한다는 플롯 자체가 오싹하다.

한 사람의 원한이 그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에게만 복수를 하는 형태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1. 살인마보다는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좋고

2. 원인 제공자 뿐 아니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고

3. 유혈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보다는 분위기 자체가 음산한 영화가 더 좋다.

   굳이 따지면 '컨저링' 이나 '디센트' 정도?

   그러니까 나는 호러에서 '인간이 알수없는 압도적인 어떤 힘 때문에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즐기는 것 같다. 



*주의* 아래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라이트 아웃]은 얼추 내 취향에 맞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적당히 반반씩 있는 셈이다. 

어둠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다이애나는, 주인공은 물론 우리들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공포스럽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불이 꺼질 때마다 긴장하게 되고, 레베카나 마틴이 든 손전등이 깜박일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 이 영화관 안에서도...?'


귀신은 불빛이 없는 밤에만 활동한다는 것은 새로울 것도 없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 '어둠' 자체를 영화의 스릴 요소로 만든 점은 이 영화의 가장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불특정 다수가 아닌 '소피'와 관련된 사람만 노린다는 점(물론 마지막에 경찰도 공격했지만),

방어 포인트가 '빛'이므로 손전등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보편적인 공포를 느끼기에는 좀 부족했고,

다이애나의 목적과 정체를 알아내고 가족 간의 관계 설정도 보여주기엔 너무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귀신보다는 오히려 가족의 사랑이 더 중심에 있는 듯하다.

실제로 다이애나가 왜 소피에게 다시 돌아왔는지, 소피와는 정말 친구였는지, 소피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들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게 느껴졌다.


그럼, [라이트 아웃]은 정말 오싹한 공포영화인가?

내 대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공포]와 [어둠], 그리고 [가족]까지 솜씨좋게 풀어 낸 볼 만한 영화인가?

라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괜찮은 호러 영화를 기다렸던 분들이라면, 

영화관에서 한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생각보다 안 무서웠다

깜짝 깜짝 놀래키는 장면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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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곡성, 이동진의 끝장평론 무비딥 '곡성'편

재밌는 것/영화


어느 순간 압도당한 영화였다.

머릿속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가득 차 있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 내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이 살짝 비틀대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서 사용된 상징과 각 장면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몇 주 째 인터넷을 뒤지게 만든 작품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도 속시원한 해설이 없는 영화는 처음이다.... ㅠㅜ

심지어 감독 인터뷰를 봐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아래 링크)


나홍진이 말하는 '곡성'의 결말.. 이 인터뷰는 영화 보고 보세요 (스포 有)

나홍진 감독이 직접 답한 '곡성' 12가지 미스터리 (스포 有)


그러던 와중에 평소 좋아하던 이동진 평론가가 '곡성'을 해석한 무비딥이라는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동진 평론가 블로그) 무비딥, 곡성 대해부

무려 2시간 짜리 방송이긴 하지만, 중간 중간 궁금한 부분들 위주로 들어보니 영화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나,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거리들이 많았다. 

상징과 대비에 대한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무릎을 탁 친 내용들만 아래 간략히 정리해 둔다.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더 보기



비록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의 해석이나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영화를 보고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역시 평론가는 다르구나 싶다.

2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고 2시간짜리 평론방송을 듣는게 과연 정상일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긴 하지만..;;

곡성에서 과연 '뭣이 중헌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단비 같은 방송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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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 <러덜리스 Rudderless>

재밌는 것/영화



러덜리스 (2015)

Rudderless 
8.3
감독
윌리암 H. 머시
출연
빌리 크루덥, 안톤 옐친, 셀레나 고메즈, 로렌스 피쉬번, 펠리시티 허프먼
정보
드라마 | 미국 | 105 분 | 2015-07-09
글쓴이 평점  


*주의* 아래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다.

도발에 능숙하고, 뻔뻔하며, 지기 싫어하고, 그만큼의 능력도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이기는 데 익숙하다.



그런 그와 아들의 관계는 어땠을까?

아마도 보이는 것만큼 가깝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사진에 있는, 둘이 같이 음악을 하던 시절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정말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족이 소중했다면, 

'사건'을 저지르기 직전 걸려온 아버지와의 전화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테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어떤 노래를 불렀다는 것도 

그 '사건' 이후 CD를 받을 때까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샘은 계속 아들의 노래를 듣는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일할 때도, 집에서 쉴 때도 계속. 

그리고 자신이 그간 읽지 못했던 아들의 외로움과 분노를 발견한다. 

그는 노래를 통해 '사건' 전의 아들에게 가까워지고,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게 되면서, 

그리고 아들 또래의 쿠엔틴과 함께하면서 마치 예전처럼 아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패션이나 연애에 대해 잔소리를 하면서 진짜 아버지처럼 굴기도 하고.

하지만, 아들의 전 여자친구의 등장으로 현실을 깨닫게 된다. 



쿠엔틴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러덜리스의 노래는 자신이 쓴 것이 아니다.

조쉬는 '사건'의 가해자다.




"My Son, My son, My son"



"나의 아들은 살인자입니다"라는 담담한 고백을 마치고, 

샘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노래를 부른다. 



I will find a way to sing your song

So sing along


What is lost can't be replaced

What is gone is not forgotten

I wish your here to sing along




늘 박수와 환호성으로 떠들석했던 펍 안은 조용해지고,

차마 박수를 치지는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을 수도 없는 비극.못한 채 눈물 젖은 얼굴로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노래를 만든 아들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그 노래를 부를수도,

다만 이제 진정한 '아버지'가 된 한 남자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말 못할 감정이

함께 있는 공간의 모두에게 울렸으리라. 

이것을 그냥 운명, 이라고 말하면 끝나는 걸까.  


"But I know where I belong"


앞으로 그는 어떻게 살아갈까. 
2년간 그의 도피처였던 보트를 팔아버리고, 
그 작은 악기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쿠엔틴이 가게로 돌아와 뭔가 어색한 듯한 얼굴로 단독공연 티켓을 내밀지도 모른다. 그럼 그는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또다시 술로 삭이려 할까. 더이상 부를 수 없는 아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쩌면- 아직은 몹시 작은 조쉬의 동생이 자라나 그의 의붓형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그의 노래를 듣게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자라서 멋진 뮤지션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콘서트에서 아무도 모르는 형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할지도 모르잖은가. 


결코 부를 수는 없겠지만. 


Rudderless [|rʌdərləs]

키를 잃고 방황하는, 어쩔 줄 모르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습일지도 모를.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소유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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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헐리우드의 중심에서 원스, 어게인을 외치다 <비긴 어게인>

재밌는 것/영화



비긴 어게인 (2014)

Begin Again 
8.6
감독
존 카니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헤일리 스타인펠드, 제임스 코덴
정보
로맨스/멜로 | 미국 | 104 분 | 2014-08-13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영화 [원스 Once]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크지 않은 극장에는 제각기 온 사람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앉아있었다.

그 안의 공기는 미지근한 듯 따스했고, 이따금 객석 어딘가에서 아, 하는 탄식 비슷한 것이 흘러나왔다.


청소기를 질질 끌고 뒤따라가던 그녀의 치맛자락이 생각난다. 

작은 악기점에서, 그가 내는 선율에 가만 가만 목소리를 얹던 그 장면.

레코딩을 하던 밤, 아무리봐도 브레멘 음악대보다 나을 것이 없어보였던 그 밴드가 만들어내던 청정한 멜로디.


아, 나는 그 영화를 정말 사랑했다. 

그 음악도. 그 화면도. 어딘가 어설프던 남녀 주인공과, 그 날 극장 안에 떠돌던 온화하면서도 쿱쿱한..마치 안락한 다락방 같던 공기마저도.



사실 [비긴 어게인 Begin Again]을 보게 된 것은 [원스]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곳곳에서 쏟아지는 극찬에 영화에 대한 기대는 자리에 앉는 그 순간까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비긴 어게인]이 나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착한 영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헐리우드 특유의 '착하고''가족적이며''감동적인' 휴먼 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데 있다. 

성공한 남자친구와 헤어져 뉴욕 한 가운데를 방황했어야 할 그레타에게는 마침 그날 연락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회사에서 쫓겨나 진정한 뮤지션을 찾던 댄은 마침 그날 바에서 기적처럼 스타성있는 싱어송라이터를 만난다. 마치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듯 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와 능력으로 인해 다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거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인맥과 재능만으로 거리에서 앨범을 레코딩하기로 결정한 그 들 콤비가 당연한 듯 온라인의 화제를 불러모으며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대중'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던 그레타.

하지만 그녀 또한 대중이 듣고 싶은 예쁜 노래를 한다.

거리에서 레코딩했다기엔 너무 적재적소에 배치된 다듬어진 소음들과, 우연히 캐스팅한 동네 꼬마들의 멋진 코러스까지 합쳐지면 전문 스튜디오 못지 않은 만듦새를 뽐내는 음악이 완성된다. 


물론, 가난한 뮤지션이니 완성도도 허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배우가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는 진정성있는 노래를 하고싶어'라고 말하는 영화의 이중성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패션에서 말하는 '빈티지'가 진짜 사용해서 낡은 것이 아니듯, 

열정만으로 만들었다는 노래에서 일부러 넣은듯한 흠결이 보인다면 보는 입장에서는 '역시 헐리우드'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스]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이 영화는 '좋다'.

싱긋 웃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미소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어벤져스의 일원이 아닌 마크 러팔로의 모습도 반갑다. 

여러 장소를 오가며 인물들을 비추는 연출은 마치 함께 뉴욕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맙소사, 애덤 리바인이 아닌가!! 

그의 모습과 목소리로 가득 찬 스크린을 언제, 또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이 가을, 다시금 이어폰을 꽂고 싶게 만드는 영화.

[비긴 어게인 Begin Again].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게 소유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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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진실과 거짓, 그 무의미한 경계 <사이비>

재밌는 것/영화



사이비 (2013)

The Fake 
8.4
감독
연상호
출연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정보
애니메이션, 스릴러 | 한국 | 100 분 | 2013-11-21
글쓴이 평점  




여기, 한 마을이 있다. 

오래 된 사람들이 오랫동안 모여 살아온 곳이자, 곧 물에 잠겨 사라질 마을.

수몰 예정 지구 통지를 받은 바로 그 날부터 이미 물 속에 갇힌 듯, 정체된 공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런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반석 교회'와 '성철우 목사'라는 이름의 구원이었다.


-아래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마을에서 일어난 상황을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립하는 인물인 최경석과 김민철은 선악이 아니라 惡과 惡의 대결에 가까우며,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가장 무고해보였던 성철우 목사 또한 惡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않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 번 살펴보자.

최경석 집사.

팩트를 아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가장 명백한 악惡이다. 그는 이미 전과가 있는 사기꾼이며, 경찰이 수배 중인 인물이다.

그가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척 하는 이유 또한 반석 꽃동산 건립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 사람들의 보상금을 빼앗기 위해서이고, 성철우는 그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부하들을 시켜 자신의 계획을 망치는 김민철을 폭행하는 것은 물론, 영선에게 등록금을 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술집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이 마을을 택하여 반석 교회를 세운 덕분에 침체되어 있던 마을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오래 앓던 칠성의 부인도 병석에서 일어나 밝은 얼굴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성은 그런 부인의 모습에 행복해한다. 비록 그가 약속한 것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거짓이었을지언정,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이 얻은 희망은 거짓이 아니었다.

  

김민철은 어떤가.

주정뱅이에 폭군, 고등학생인 딸이 모은 용돈을 노름하는데 탕진하는 쓸모없는 이 남자는 자기 가족에게조차 배척당하는 존재이다. 그가 최경석 일당의 사기 행각을 밝히려는 이유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던 반석 교회의 정체를 알고 진실을 전달하려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 김민철인 것도 사실이다.


상냥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고, 하나님 안에서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성철우 목사.  

언뜻 보기에 그는 우연히 최경석 일당의 범죄에 휘말린 가엾은 희생양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철우는, 비록 비난받을만한 강력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음으로써 다른 이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거대한 악을 고개 숙이고 수용하는 것 또한 누군가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성 목사는 과연 순진한 얼굴과 온화한 미소, 그리고 거룩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진정한 '선'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단순히 사기라는 범죄의 피해자에 불과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수배 전단 위의 사진을 내밀었을 때, 단호하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성철우 목사의 대답에 동조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이 마을이 다다른 비참한 결말의 책임에서 마을 사람들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체된 마을을 떠나 타지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힘겹게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외부인이 약속한 휘황찬란한 미래를 믿고 따를 것인가? 마지막 칠성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반석 교회가 약속하는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나마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다. 하지만 의심하지 않고 '믿기로 하는 편'이 마을 사람들에게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기에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 결과가 성 목사와 반석 교회에 대한 맹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마을 사람들도 결국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진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누가 영선에게, 교회는 사기이니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는 비참한 생활을 견디는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허울좋은 입에 발린 말이라고 해도 그 것이 있었기에 영선은 그 시간을 행복해하며 보낼 수 있었다.

칠성의 부인도 그렇다. 죽은 다음에 하나님이 계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바로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그것을 믿지 않을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당장,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데. 


이 마을에서의 참극은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타고난 악''악에 맞서는 악', '선을 자처하는 악'과 더불어 '악을 탐하는 악', 혹은 '악을 방조하는 악'이 각자의 욕망을 극한까지 추구한 끝에 벌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곳이 얼마나 될 것인가하는 자조와 함께.



The truth is, whatever you choose to believe in.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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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더불어 사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말하는 건축가>

재밌는 것/영화


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2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유걸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
다운로드 글쓴이 평점  




건축가 정기용.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는 그를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통해서 처음 만났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 소박한 차림새, 하지만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열정적으로 말하는 남자.

면사무소 설계를 맡은 다음에,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아니라 먼저 주민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했던 목욕탕을 공공건물에 넣은 건축가.  
관람하는 주민들을 위해 등나무로 관중석의 그늘을 만들어준 건축가.
화려하거나 세련된 그런 건축은 아니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공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치밀하게 구상하고 설계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들.

그런 정기용 선생님을 보면서 
나는 나의 일을 혹시 사용자, 소비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닌 지 반성했더랬다.



"내가 생각하는 집은 
일상이 반복되는 친숙한 공간일 뿐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준 다큐멘터리. 

이 영화의 평점은 영화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위대한 건축가의 삶에 존경과 감사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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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천국도 지옥도 오직 열차 안에- <설국열차>

재밌는 것/영화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글쓴이 평점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음 내용에는 관람자의 상상에 의거한 줄거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Goodbye, global warming!!"

 

인류는 재앙을 앞두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도 오래 함께 해 왔기에, 그리고 인간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파멸의 징조가 시작되었기에. 지구 온난화라는 적이 인류의 생존에 이렇게까지 치명적일줄은, 그 위협이 바로 눈 앞에 밀어닥칠 때 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CW-7은 희망이었다. 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인간이 살기 힘겨울정도로 올라가버린 기온을 다시 떨어뜨릴 수 있는 어떤 물질. 각국의 정상들은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CW-7의 대량 살포에 동의했고, 대기권 높이 치솟은 CW-7은 언뜻 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년째 천장으로 치솟던 기온 그래프가 마침내 빠른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그리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CW-7에는 적정기온을 맞춰줄 수 있는 기능은 없었다. 떨어지기 시작한 기온은 다시 올라올 줄 몰랐고, 모든 것은 꽁꽁 얼어붙었다.

지구에는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왔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철로 위를 달리는 어떤 쇳덩어리 내부 뿐이었다.

 

설국열차 Snowpiercer, 그 열차가 인류의 마지막 구원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릴 때 부터 열차광이었던 윌포드의 꿈이 실현된 순간과 새로운 빙하기의 시작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을 뿐,

열차 안의 절대자, 윌포드는 그저 '열차'안에서 완결된 세계 Closed circle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거칠게 말하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동체랄까.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 처럼, 열차는 1년 주기로 세계를 순회한다.

열차 안에는 주거지역과 유흥시설, 학교와 병원이 있고, 수족관과 온실에서 농수산물도 얻을 수 있다. 

필요한 물은 외부의 눈과 얼음을 녹여 조달한다. 내부의 질서는 절대자 윌포드와 메이슨 총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강력한 군인들이 체제를 뒷받침한다. 절대왕정을 달리는 열차 안에 밀어넣으면 이런 모습이 될까. 성스러운 엔진으로부터 부여받은 절대권력의 윌포드. 그의 대리인 메이슨. 그에 따르는 충실한 추종자들. 그들-앞쪽칸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신발이 머리 위로 올라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고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역할을 고작 신발로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왜 그들에게 있는가?

꼬리칸의 젊은 리더, 커티스의 계획은 이랬다.

문을 열 수 있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가 있는 감옥칸까지의 모든 문이 한꺼번에 열리는 시간은 단 4초.

그 문들이 닫히지 않게 한번에 막아 감옥칸에 도달해서 그를 포섭할 수 있다면, 앞쪽칸까지 갈 수 있다..!

이 열차의 지도자는 길리엄이 되어야 해! 

그렇게 꼬리칸 해방을 위한 커티스의 반란이 시작된다.

 

 

각자의 이유로 앞을 향해 돌진하는 꼬리칸 사람들.

한없이 진지한 그들에게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는 독특한 존재다.

우선, 이들 부녀는 꼬리칸 해방에 관심이 없다. 꼬리칸에도, 꼬리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건 오직 크로뇰 뿐이다.

하지만 커티스와 에드가, 타냐에게는 이들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야말로 앞으로 가는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유일한 열쇠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휴머니즘이나 진정성이 아니라 열쇠 자신이 원하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아이러니.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자주 다루어진 캐릭터이긴 한데, 영화에서 보는 건 또 새롭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메이슨, 이 사랑스러운 악당!

틸다 스윈튼은 인터뷰에서 이 캐릭터에 대해 '나쁜 리더의 모든 특징을 모아놓은 괴물' 이라고 평했지만,

나는 어떤 면에서는 메이슨이 좋은 2인자 급의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폐쇄된 조직에서 좋은 2인자의 필요 조건은 '1인자에 대한 믿음' 이니까.

그런 면에서 메이슨은 윌포드에 대한 확고하고도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교실 칸에서의 사건 또한 메이슨이 준비했거나, 최소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설국열차 홈페이지: http://snowpiercer2013.interest.me/

 

길리엄은 배신자일까?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달리는 열차라는 폐쇄된 공간안에서, 윌포드가 구축해놓은 균형잡힌 시스템을 파괴한 다음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No' 라는 결론을 내렸을테고, 모두가 죽음을 맞이할 바에야 이 체제에 협력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에 한번씩, 젊은 지도자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사람들의 지지를 모아주는 식으로 협력했을 테고. 빨간 쪽지의 정체를 알면서도 앞쪽칸으로 가서 우리를 도와주는 동료라는 식으로 전한 것도 그였을지도 모른다.

 

 

열차는 달린다, 그러나

 

윌포드는 다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그에게는 열차 안이 완벽한 세계이므로.

열차 안의 물건들은 탈때 가지고 온것이 대부분이고, 안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 다 떨어지면 멸종(extinct)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설국열차 안에서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며,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은 다들 앞 칸으로 갈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윌포드의 학교에서는 밖으로 나가면 바로 죽는다고 가르치며, '얼어죽은 7명 (Frozen 7)' 을 교육적 상징물로 삼는다.

하지만 열차에는 온도계도 있고,원한다면 밖을 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예카테리나 브릿지를 지날 때마다 "올해는 작년보다 2°C 정도 올랐네요. 남극 펭귄 정도는 활동할 수 있는 날씨입니다." 라고 안내해 줄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탑승객들은 탑승할 때의 시간 그대로 멈추기를 원한다. 다소 부족하지만, 그런대로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자유와 풍족함을 누리면서 그 안에서 꺠지 않기를 원한다.

 

영원히 달리는 열차는 영원할 것만 같지만, 결국 천천히 죽어가고 있는 셈이다.

 

"저것도 문이야. 내가 열고 싶은 건 저 문이라구!"

남궁민수의 이 대사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밖으로 나온 요나와 티미는 아마..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에서 언뜻 봤는데,

황인종과 흑인종이 새로운 조상이 된다는 부분도 재미있지 않냐는 그런 내용이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단순히 기술이나 문명뿐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좀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의 절반 정도가 눈으로 덮여져, 아주 춥고 에스키모 마냥 얼음집에서 북극곰이랑 술래잡기하면서 살아야할지 모르지만,

문명이 몇백만년쯤 뒷걸음질친 새로운 세계에서 인종과 국적과 사상과 종교의 경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새로운 생명이 시작하는 그런 희망을...

 

열차 밖에 펼쳐진 세계에서 읽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가지 생각들+의문점

 

+남궁민수는 왜 감옥칸에 들어갔을까?

그는 꼬리칸의 사정을 모른다. 그리고 18년 전에 탑승한 커티스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최소한 제대로 돈을 내고 탑승한 승객이라는 소리인데...

왜, 감옥칸에 딸과 함께 갇히게 되었을까?

그리고 죄가 있는 사람은 그냥 죽이면 될텐데 굳이 감옥칸이 따로 있는 이유는,

승객이기 때문인걸까?

 

 

+커티스는 지난 혁명에서는 무슨 역할을 했나.

몇번의 혁명을 거쳐 살아남은 걸까?

혹은, 이번에야 말로 자기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느낀 걸까?

 

 

+생선, 육류 등의 개체 수를 면밀히 계산하여 제한하고 있다면, 당연히 산아제한도 있을 것이다.

앞쪽칸에서는 출산 허가제 같은 것이 실시되고 있지 않을까?

아이를 낳아도 미래가 없으니 자발적인 피임 시술 같은 것이 성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꼬리칸은 일종의 인력시장같은 것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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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man>

재밌는 것/영화
서칭 포 슈가맨
  • 감독 : 말리크 벤디엘로울
  • 미국에선 ZERO, 남아공에선 HERO?!
    팝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가수, ‘슈가맨’의 놀라운 이야기!

    <.. 더보기




<서칭 포 슈가맨>의 초반부에는 슈가맨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슈가맨을 사랑하고 궁금해하는 수많은 팬들과, 음반 제작자들과, 그리고 동료들이 나타나 그에 대해 한마디씩 할 뿐이다. 

사실은 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슈가맨의 동료가 하는 얘기와, 

팬들과 음반 제작자들이 하는 얘기는 묘하게 시제가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굉장한 가수가 있다는 말에 디트로이트의 뒷골목을 찾아간 프로듀서들은

그 가수, 로드리게즈의 재능에 반해 당장 계약을 맺는다. 

제작자들은 디트로이트의 작은 펍에서 노래하고 있던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그는 마치, 현자나 예언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을 사로잡은 가수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슈가맨’으로 알려진 ‘시스토 로드리게즈다. 

그 당시 서섹스 레코드의 소유주이자 마이클 잭슨, 마일스 데이비스, 자넷 잭슨 등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일했던 클라렌스 아반트가 그의 음악에 반해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음반은 얼마 팔리지 않았고, 

로드리게즈는 단 두 장의 음반을 발매하고 사라진 무명가수로 남았다.

왜 그랬을까?

로드리게즈와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들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같은 최고의 팝스타들을 배출해낸 베테랑들이었다.

게다가 시스토 로드리게즈의 성공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건 두 음반의 잇따른 실패로 로드리게즈는 결국 음반사와의 계약을 연장할 수 없었고, 

그는 디트로이트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음반이 어떻게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전해졌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 

아마 남자친구를 찾아온 미국의 한 소녀가 들고 온 음반 중에 섞여있었던 것 같다, 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로드리게즈의 음악에 푹 빠졌고, 그의 음반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곧 어두운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남아공 청년들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로드리게즈의 멜로디는 아름다웠고, 가사는 솔직했다. 

남아공 청년들은 그의 노래에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에 힘입어 자유를 노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스토 로드리게즈는 그가 모르는 사이, 

가본 적도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전설이 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로드리게즈를 찾아낸 것은 남아공의 한 팬이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로드리게즈의 딸이었다.

지구상의 두 점은 마침내 하나로 이어진다.  





나는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화질은 군데군데 조악하고, 전개는 어딘가 어설프다. 


다만,이런 형태로나마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져야만 했던,

'아주 좋은 이야기'라고는 생각한다.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기적,

그 존재를 믿게 해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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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모성애란 뭘까? <늑대아이>

재밌는 것/영화



늑대아이 (2012)

The Wolf Children Ame and Yuki 
9.2
감독
호소다 마모루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오오사와 타카오, 쿠로키 하루, 니시 유키토, 오오노 모모카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로맨스/멜로 | 일본 | 117 분 | 2012-09-13
글쓴이 평점  





이런 것일까?



모성애 [Maternal Affection, 母性愛]

생활이 불충분하고 발달이 미약한 유아에 대해서 어머니가 가지는 애정. 특히 보호, 염려, 돌봄, 접근, 접촉 등에 의해서 표현된다. 

이것과 유사한 행동은 동물의 암컷에도 나타나며, 이것을 <모성애>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모성애'는 본능이라기 보다 좀더 사회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이 가져야 할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자식 뒷바라지를 잘 했다고 평가 받는 어머니에게 '위대한 모성애'를 타이틀 처럼 붙여주기도 한다. 내가 느끼기에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모성애' 는 몇 가지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첫째, 어머니가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기한 것이 많을수록 '모성애'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포기하지 않고도 자식이 잘 자랐을 경우, 예를 들어 워킹맘이면서도 자식 교육을 잘 시켜서(아웃소싱?) 좋은 아이로 잘 자랐다거나,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모성애'를 이야기하기 보단 '대단한 여자'로 인식되는 것 같다. 즉, 모성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어머니의 '희생'이다. 


둘째, 양육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클 수록 '모성애'가 강하다고 평가한다.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그 강도가 강할수록, 그리고 그 것을 잘 견뎌낼수록 모성애가 강한 어머니가 된다. 예를 들어 홀몸으로 육체적인 노동을 하여 아이들을 키운다거나, 아이에게 장애가 있어 이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헌신했다거나 할 경우. 그런데 어머니가 전문직이나 사무직에 종사할 경우, 따라서 연봉이 좀 높거나 노동의 신체적인 강도가 크지 않을 경우에는 모성애와 잘 연관시키지 않는 듯 하다. 


셋째, 자식이 잘 되어야 '모성애'가 위대해진다.  

정의대로라면 모성애는 모든 어머니가 자식에게 가지는 애정인데, 그 가치는 양육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 처럼 보인다. 



조사해 본 결과 모성애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여성에게 '권장' 되면서 어느 정도 신화화 된 측면도 있다고 하니, 저런 식으로 느끼는 것이 꼭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늑대아이>는 늑대인간인 아버지와 평범한 인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늑대아이 유키와 아메의 성장담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며 학교를 다니던 여대생 하나는 어느 날 강의실에서 만난 '그'에게 끌리게 되고,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된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의 정체는 늑대인간.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도 늑대인간이었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하나는 두 아이와 함께 깊은 산 속의 집에서 살아가게 된다. 낡고 망가진 집을 혼자 힘으로 수리하고, 손에 익지 않은 농사도 짓고, 약간의 돈을 벌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하나. 이렇게 아이들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하나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힘들어 보였기 때문인지  <늑대 아이>의 감상에는 '모성애'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데다,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평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나의 생활보다는 아이들의 성장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늑대와 인간이라는 확연히 다른 두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운데 각자의 길을 걷는 아이들이 더 인상깊었던 나로서는 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출처 daum 영화 (http://movie.daum.net/)


'모성애'라는 주제가 나를 크게 울리지 않은 것은, 어쩌면 내가 하나와 비슷한 연령의 여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저런 생활이 곧 나의 생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피상적으로 "역시 모성애는 대단해!" 하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아이를 가진다면 나는 당연히 나의 아이를 사랑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사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주 위대한 모성애의 발현일까? 하는 질문에는 갸웃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 주위에는 많은 워킹맘들이 있고, 그들은 모두 아이를 사랑하지만 일도 해야 한다. 그럼, 아이들을 혼자 힘으로 돌보지 못하는 어머니들은 <늑대 아이>의 하나에 비해 모성애가 없거나-적다고 봐야하는 걸까? 누구도 각자가 가진 아이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측정할 수는 없다. 사회는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 헌신하는 행동을 보고 그 원인을 '모성애'라고 유추할 뿐이다. 그런데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와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해내려는 멋진 여성들에게는 위대한 어머니가 아닌 '독한 여성'이라는 타이틀이 먼저 붙으니, 답답할 수 밖에.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전체 회식 때문에 아픈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회식 후 9시쯤 귀가했더니, 남편과 시어머니 합동팀으로부터 '모성애가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선배를 생각하면, 도대체 사랑을 의무로써 강요하는 '모성애'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나는, 

<늑대아이>의 하나가 해낸 많은 것들이 단지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했고,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 부딪히는 험한 환경 속에서도 기 죽지 않았고, 잇따른 실패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단지 모든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혹은 가져야 할-'모성애'의 화신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는 밝고, 긍정적이고, 잘 웃고, 상냥하고, 너그럽고, 강인한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좋은 아내일수도, 좋은 어머니일수도 있었다. 

대단한 건 모성애가 아니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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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케빈에 대하여>

재밌는 것/영화
케빈에 대하여

 

 

 

 

이 영화에 대한 여러 감상평 들 중에서, 유독 그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모성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형벌' 이라고.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가며 보여준다. 현재의 에바는 무엇인가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거절과 냉대에 익숙한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과거의 그녀는 좀더 자유롭고 자신감 넘쳐 보인다.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영화는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는 에바의 회상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케빈이,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자신이 케빈이 그런 일을 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건 아닌지, 를 기억속에서 필사적으로 찾아내려 하는 듯한 그녀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잘못했을 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행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자유로운 사랑 끝에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비록 한 남자의 곁에서 아이를 낳고 결혼 생활을 해 나가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는 대기실에 가득한, 기쁨에 찬 임산부들 틈에서 지독한 불편함을 느낀다. 무엇인가에 구속된다는 불안감.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되었다는 박탈감. 상실감.  자신이 낳은 아이를 그저 사랑과 애정으로 보듬어 주기엔 자신 안에 자신이 너무 컸던 에바. 그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한다. 아이에게 어색하게나마 말을 걸고, 산수를 가르치고, 공놀이를 한다. 하지만 아이, 케빈은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족 구성원 중 오직 그녀에게만 전력으로 반항한다. 오직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배변을 못가리는 척을 하고, 숫자를 틀리게 부르고, 그녀가 건네는 말을 무시하고..그렇게 모자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에바에게 절대적인 모성이 없었다는 것, 끝내 그녀의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었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죄일까?

하지만 누구든 자신을 싫어하고 괴롭히는 작은 존재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기란 어렵지 않을까?

단지 그 모자에겐 서로를 이해하고 익숙해질 시간이 남들보다 좀더 많이 필요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과연 케빈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근본적인 이유가 그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가 자신을 싫어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자신의 아이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육아에 대한 그런 종류의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 맞닿아 있다.

 

모 정신과 선생님은, 이 가정에서는 남편이 틀어진 모자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케빈의 공격성이 엄마만을 향하지 않도록, 다른 구성원들이 분담할 필요가 있었다고.

정말로, 에바가, 남편이, 케빈이,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상황은 좀더 달라졌을까?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해봤자 의미없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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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럼에도, 가족일 수 밖에 없는- <디센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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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두 딸이 있는 가장이자 잘 나가는 변호사인 그.
하지만 그가 남들과 다른 점은,
그의 소중한 아내가 식물인간 상태라는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그가 아닌 그녀의 정부와 함께 있다가 닥친 사고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믿기 힘든 사실까지.
만약 이 영화의 배경이 뉴욕이나 시카고같은 대도시였다면,
영화의 결론은 사뭇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모든 걸 가진것 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독했던 남자는 외로움에 지쳐 아내와의 영원한 이별을 결심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관객은 끝이 없는 적막감과 회의에 몸부림치는 남자의 결말을 지켜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하와이.
이 영화의 배경은 다행스럽게도 하와이였기에,
문제작이 되기에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 이 영화는 가족 코미디로 성공할 수 있었다.
우울해지거나 슬퍼하기엔 너무나 화창하고 푸르른 하와이의 바다.
슬픈 듯 기쁜 듯, 느릿느릿 읊조리듯 노래하는 음성과 어우러진 우쿨렐레의 선율까지.
그 아름다운 섬에서,
맷과 두 딸은 자신의 아내와,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고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다투고 서로 힘들어하던 나날을 뒤로 한 채-

삶과 죽음, 풀리지 않는 가족의 문제 등의 묵직한 주제를
'아무래도 좋으니까', '가족이니까' 하고 넘겨버릴 수 있었던 것 그 아름다운 해안의 풍경 덕분일지도 모른다.

맷은 아내를,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물론 그런 시간도 있었겠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쑥스러운, 그런 가족의 모습을 비춘다.
어쩌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인연으로 묶인 가족 간의 관계는 서로에게 허용하는 '자유'의 범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인생에, 일상의 순간을 상대방이 들어와 간섭하거나 관여할 수 있는 자유.
혹은 관용의 범위가 허락된 만큼이 가족이 가진 인연의 강도가 아닐까..하고 말이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도 몹시도 인간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에, 업무에, 생활에 신경쓰느라 최근엔 내내 잔뜩 곤두서있던 기분이 어쩐지 느긋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
그런 거대한 생명의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문득 축복처럼 느껴지는 영화. 디센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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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중요한 건, 기적을 바라는 그 마음-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재밌는 것/영화



영화를 보면서 기묘하게도,  Arthur C. Clarke의 말이 떠올랐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였던가.

하지만 구분하기도 어려울만큼 비슷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도 어른과 아이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어른들은 마법같은 사건이 과학 기술의 성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어난 것일거라고.
하지만 아이는 그것이 마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신이나 자연의 특별한 존재가 전능한 힘으로 이뤄낸 일이라고 말이다.
이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은 아직 마법같은 기적을 믿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각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게된 형제, 코이치와 류노스케.
엄마와 함께 외가에서 살게 된 코이치는 어느날 반 친구들이 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새로 생기는 고속 전철이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소원을 빌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네 식구가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기적을 꿈꾸는 코이치는 친구들과 함께 전철을 보러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영화 속 아이들의 소원은 정말이지 어린애다운 것도 있고, 나름대로 가슴 아픈 것도 있어서
보는 내내 약간의 저릿함이 느껴졌다.

  가면라이더가 되게 해 주세요.
  마블이 살아나게 해주세요.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세요.
  같은 반 친구를 이기게 해주세요.

어른들은 이미 저 소원이 이뤄질 수 있는 건지, 혹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를 대부분 알고있다.
혹은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어른들이 알고 있는 답은 적어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쿠마모토까지 열차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러
먼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차를 타고 집을 떠난다.
현실에서는 기차가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본다고 해서 죽은 개가 되살아나는 일 따위는 일어날리가 없지만,
전혀 인과 관계가 없는 두 사건이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온 마음을 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내가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일도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는 점이 너무나 아이들다워서 웃음이 나는 한편, 
그렇게 올곧게 바라고 있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은연중에 확신하는 나 자신에 조금 씁슬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나 자신도 아주 어릴 땐,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하면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길줄 알았는데 말이다.



영화는 집에 돌아온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기적이 일어났을까?

사실 그런 의문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장 큰 기적은,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조금쯤 달라졌다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거나,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소원 대신 할 수 있는 일부터 찾는다거나.
기적을 바라던 그 순간에 진심으로 마음에 떠오른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떠올린다거나.

아마도 그런- 생각이나 가치관의 변화와 성숙이
이제부터 아이들의 삶을 찬란하게 꽃피워줄,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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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미디어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 <블랙 미러 Black Mirror>

재밌는 것/드라마


화제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Black Mirror> 
블랙 미러는 컴퓨터나 휴대폰과 같은 전자 기기의 전원을 끈 후에 나타나는  검은 화면을 뜻한다고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기계가 사용자의 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제목대로, 이 드라마는 미디어가, 그리고 미디어를 보는 대중이 미디어에 비춰지는 개인에게  어떤 파국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충격적인 소재와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블랙 미러의 첫번째 에피소드.

새벽에 급한 연락을 받고 잠옷바람으로 달려온 수상은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주의 비디오와 마주한다.
사실 공주는 새벽에 괴한에 의해 납치당한 상태로,괴한의 요구를 알리는 비디오가 수상 앞으로 날아온 것. 
겁에 질린 공주는 덜덜 떨면서 납치범의 요구를 말하는데..그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
즉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공중파로 생방송 중계한다면 공주를 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납치범이 이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렸다는 것이다.
수상이 이 사실을 알게되어 방송 통제를 지시한 순간 이미 영상은 SNS를 통해 전 세계에 퍼진 상태였고,
영상을 본 모든 사람들이 수상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언론사에서도 결국 보도하기로 결정하고..



범인이 지정한 오후 4시는 점점 가까워만 오는데..


어떻게든 피해보려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공주가 위험에 처한걸 알게되자 여론은 점점 수상에게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수상 앞에는 돼지 한 마리가 놓이게 되는데..


수상이 납치범의 요구를 이행하고, 풀려난 공주


그리고 1년 후..

수상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건 이후, 수상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가장 상처를 입었을 부인과도 잘 지내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비록 실상은 그들 부부만 알고 있는 것이지만.


 

문제의 납치범. 그는 그 사건이 자신의 예술이었다고 말한다.





소재의 기괴함만 떼어놓고 보면, <블랙 미러>미디어와 대중이 관전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많은 폭력을 카메라가 비추는 대상에 휘두르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집요하게 파헤친 수많은 사건들이 이미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았나.
굳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마무리한 케이스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 든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를 보면서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정보를 고민없이 '흡수'하고,여과없이 '전달'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에 쥔 정보가 정확한 진실인지, 현실 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다만 그 정보가 자신의 유흥거리로 삼기에 적절한 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자신은 카메라 밖에서 안전한 이름 없는 대중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산산조각 나는, 영원히 돌이킬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는데 말이다.
미디어가 불러올 또 다른 비극을 피하려면,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오늘도 액정화면을 가득 메운 셀수 없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믿고 믿지 않을 것인지, 만약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에 기초한 믿음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스스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믿으며, 그로 인한 결과를 기억하는 것. 이것이 수많은 군중의 가벼운 여흥이 빚어낼 무서운 참극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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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문제는 사랑, 사랑?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재밌는 것/드라마

「사랑하고 있나요?」하고 물었을 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대 후반, 정도 나이의 여성을 다룬 컨텐츠로는 2011년에 처음으로 본 듯한 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예전에 서플리를 볼 때만큼의 절실함과 우울은 없었지만,
그맘 때의 '연애'를 가벼운 터치로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내게 딱 맞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드라마에는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지만, 일단 주역은 아래의 세 명.
사키, 마코, 그리고 후지이. 나이로는 후지이가 가장 연상이다.


이 아가씨는 사키.


주위에는 유명 출판사에 다닌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출판사에 취업하고 싶어하면서 돈을 모으기 위해 클럽에서 일하는 아가씨, 사키.
여기저기서 많이 본 배우인데, 정말 동양적으로 예쁜 외모다!!
근데 그래서 그런지 해피한 여주인공 역할로는 잘 안나오는 듯.
묘하게 호러나 어두운 분위기의 사회파 드라마..같은데 자주 등장한다.
일단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에서는,
여러 남자와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맞추며 만나고는 있지만 실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누구보다 외로움 타는 주제에 강한 척 하는 아가씨로 나온다. 


가장 어린 마코. 이 아가씨도 귀엽다.

마코는 가장 순진무구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로 무지-하게 고민하고,
마음이 있는 선배에게 매일 도시락을 갖다주려 하는 순정파.
건전하고 성실한 연애를 원하지만,
어떻게 걸리는 인연은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
그래서 첫 애인에게 혹독한 꼴을 당하기도 하고.

 

이 아가씨는 후지이. 카리나 너무 이쁘다!!

몇년인가 전에 가장 친한 친구인 유우와 사귀다 2주만에 차인 과거를 가진 후지이. 
그 후로 연애는 귀찮다며 회피해오고 있지만, 유학갔던 유우가 다시 회사 동료로 돌아오면서 흔들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이입하기 쉬웠던 캐릭터.  

드라마는 주로 이 세 사람의 사랑과 일-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몇 년정도의 텀은 있겠지만, 
딱 이맘 때의 여자가 할만한 고민을 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꽤나 공감했다.

뭐랄까, 직장에서 나름대로 인정은 받고 있지만 과연 이 직장에서 이대로 괜찮은걸까, 하고 고민할 때도 있고.
사랑하고 싶다,사랑에 빠지고 싶다,가 아니라 연애해야 되는데!!하고 연애가 일종의 일이나  의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영원히 나만을 사랑하겠다는 이 남자를, 이 남자의 말을 그냥 덥석 믿어도 되는 건가,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고.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음이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고.
반대로 이 사람을 사랑해선 안되는데, 하고 다짐할수록
자꾸만 그를, 그의 얼굴을, 그의 손짓 하나 하나에 마음이 끌려서 괴로운 시간도 있고.

누구나 한번 쯤은 겪어 보았을법한 그런 시간을 후지이, 마코, 사키를 통해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맞닥뜨렸을 당시와 지금의 감정을 비교해 보는 것도.

 

억지로 셋이 함께 나간 미팅에서 불편해 하는 후지이.

 미팅이나 소개팅은 몇 번인가 해봤지만 전혀! 익숙해 지질 않는다.
익숙해지면 그것도 나름대로 슬플 것 같지만.



클럽에서 일하는 사키는, 그나마 세 명중 가장 남자와의 접촉이 많고 인기도 있지만
그만큼 더 허전함을 느끼는 중.
하긴, 그저 허울 뿐인 만남을 지속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하다.
그래서 자신을 신사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해준 타쿠미에게 더 매력을 느낀 건지도 모른다.
그는 적어도 예쁜 여자,가 아니라- 사키 자신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즐겁게 생각했으니까.
불륜일지도 모르지만.. 낯선 타인이 자신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신비로운 체험이고, 그게 연애의 장점이니까.


그 와중에 후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우가 거래처의 여성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세 여자.


 


 사실 이 드라마는, 제목과는 달리 많은 연애 지침서처럼 '네가 연애 못하는 이유는 이거야!'하고 콕 찝어서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홀로서기를 준비하고, 이제 겨우 스페셜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한 20대의 여성들에게,
정말 연애를 하기만 하면 돼? 네 문제가 연애 밖에 없어? 하고 묻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와서야 제대로 사랑의 조짐같은걸 보이기 시작한 사람은 이중 딱 한명 뿐이니,
 <내가 연애 못하는 이유>는 그냥 연애가 어려워서..일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이 처음보다 한층 더 밝아보이는 건,
적어도 자신의 길을 찾았다는 기쁨자신이 연애에서 무엇을 구하는지를 깨달았다는 것, 그 두가지 때문이 아닐까. 
나도 드라마를 보면서 최근 몇년인가 계속 해오던 생각을 정리하고 조금은 개운해진 것 같다. 
뭐랄까.. 나는, 그러지 않으려 노력은 많이 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나 자신의 태생적인 결핍, 공허감과 같은 것이
연애를 하기만 하면 전부 사라질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당신의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 아니냐고, 불안해하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 자신의 결핍은 나만이 채울 수 있는 것이었기에, 상대방이 그 누구라도 나의 수호천사는 될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아파하는 또래 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만 함께 있었기에 아파하는 시간을 조금 줄이거나, 덜 불행할 수는 있었지만. 
그리고 아주 가끔은, 혼자였다면 결코 가질수 없을만큼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는 있었지만,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는 없는 거였다. 
같은, 인간이니까.  

하루키는 어떤 결혼식의 축전에서 이렇게 썼다.
나도 한번 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 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 라고.

그러니까 연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좋을 때는 아주 좋은 것.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예쁜 드레스나 가방을 선물받고, 최상급 요리를 제공하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그런 것도 멋지지만.
새해 첫날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 어찌됐든 분위기를 내볼까, 하고 이러저리 돌아다니다
결국 지쳐서 허름한 골목에 있는 이름도 모를 심야식당 같은 가게에 들어가 소박한 요리를 곁들인 맥주를 한 잔 주문하는 거다.
가게에선 오래된 재즈 같은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게 또 의외로 마음에 들고.
으음 뭐랄까, 생각했던 것 같은 반짝반짝하고 멋진 연말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잖아. 아니, 의외로 꽤 괜찮은걸- 하고는 마주보고 웃는, 그런 느낌.
내겐 그런 느낌이 '아주 좋은'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조금은 두근대는,  1월의 첫날을 맞이하며.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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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꿈은 희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뮤지컬 <이채>

재밌는 것


 


출처: CJ AZIT 블로그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뮤지컬 <이채>

작.작사 _ 한재은

작곡 _ 임윤선
연출 _ 김동연
음악감독 _ 양주인
출연 _ 임진웅, 성종완, 전재홍, 김민건, 전미도, 김경수
관람일시 : 2011년 7월 26일 (화) 오후 3시


때는 일제 강점기. 
작은 극단의 무명 배우였던 청년은 왕자 '이채'를 모시는 독립군들로부터 어떤 제의를 받는다.
그것은, 왕자 '이채'가 되어 달라는 것.
일견 황당해 보이는 이 제안은 사실 가짜 왕자를 대역으로 세워 진짜 왕자인 '이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청년에게 이를 제안한 나순은 이것이 청년의 꿈인 슈퍼스타이자 일생일대의 배역이 될것이라는 말로 그를 설득하고, 이에 넘어간 청년은 결국 왕자 '이채'의 대역으로 중요한 행사에 나가게 된다. 그러나 행사장에서 진짜 왕자 '이채'는 불의의 습격으로 인해 그만 목숨을 잃고, 남은 건 '이채'를 옹립하려던 독립군들과 가짜 왕자 역할을 한 청년 뿐. 하지만, 독립 운동 자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꼭 진짜 왕자 '이채'가 필요했기에 청년은 조금 더 독립군들과 함께 왕자 '이채'로 살아가기로 한다. 

  

위와 같은 배경 설명만 놓고 이 뮤지컬을 판단한다면 어떨까?
아마, <영웅>과 같은 민족 대 서사시와 같은 내용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일제의 탄압과 민족의 비극, 의사 안중근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과 같이 극적이고 강렬한 사건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를 다루는 많은 극과 드라마에서는 영웅시 되는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그가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영웅적 행위를 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관객이 일제에 대한 분노와 주인공에 대한 경외, 그리고 벅차오르는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곤 했다. 그러나- 뮤지컬 <이채>는 이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많은 극적 배경과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를 그저 꿈많은 청년으로 살고 있었던 가짜왕자 '이채'를 내세워 역사적 관점보다는 개인적 관점에서 이 시대를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이전의 많은 '영웅적' 일대기에서 감동과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느낀 내가 모처럼 즐겁고 흥미진진하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가짜 '이채'역의 김경수 배우님 (출처: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이 뮤지컬 <이채>가 가지는 수많은 장점 중에서, 나는 무엇보다 '재미있다' 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칫 무겁고 심각해지기 쉬운 소재이고, 독립에 대한 강한 열망과 책임감을 가진 '배일'이나 가짜 '이채'의 유혹자이자 일본 경찰의 스파이로 등장하는 케이타와 같은 등장인물들은 동일한 소재를 다룬 기존의 극에서도 있었을 법한, 그 시대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가짜 왕자 '이채'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가짜 왕자 이채를 맡은 청년의 본명은 극 내내 나오지 않는다. 그는 계속 가짜 '이채'이다.) 그는 단지 꿈을 가진 젊은이였고, 어쩌다 독립군의 활동에 협력하게 된 후에도 최초의 순수함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의 쾌활함과 순수함은 그가 자신이 '가짜' 왕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닌 그저 자신의 연극이고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그는 시종일관- 심지어 진짜 왕자 '이채'의 죽음 앞에서도 다소 가볍고 경박하기까지 한 천진난만함을 보인다. 덕분에 사랑도 싹트고 말이다 .. -_-  신기한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붕 떠있어야 할 것 같은 청년의 캐릭터가 극 안에서는 다른 인물들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사실 밝고 건강하고 순수한 청년의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전형적'이다. 청춘 소설이나 만화에 나올법한 열혈 바보 캐릭터의 몇 가지 특징을 이어받은 청년은 극의 전반부에서는 주로 웃거나 떠드느라 바쁘고, 다른 인물들은 청년을 견제, 혹은 이용하거나 사랑하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무거운 시대 배경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가짜 '이채'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전반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부. 
결과적으로 가짜 왕자 '이채'는 조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마지막에서야 진정한 '왕자' 이자 '영웅' 이 되었다고 볼수도 있는 결말.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민족의 영웅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내 안의 가짜 '이채'는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착한 청년 정도일까. 그저 그가 일생 일대의 배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는데, 진심으로 감탄해주는 관객 한 사람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채'역을 연기하는 '배우'였을 뿐, 왕자도 영웅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엾다. 그의 죽음이. 그리고 실제의 그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그의 짧은 삶이. 그렇게 뮤지컬 <이채>는 끝을 맺는다. 

 높은 몰입도와 적절한 유머, 빠른 템포의 전개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청년이 이채의 대역을 수락한 이유가 그 후에 계속되는 위기에서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만큼의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청년은 모두가 선망하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슈퍼스타'가 되려면, 관객이 청년이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터인데, 가짜 '이채'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역할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것이 일생일대의 배역이라는 역할을 이유로 승락하는데, 이 부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모든 일이 성공한 후에 너의 정체를 밝히고 널리 알리겠다'거나 '이 후에 대극장의 주연 배우 자리를 확보해 주겠다' 는 식의 관련된 인센티브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연기에 대한 집념이나 열정이 거의 표현되지 않아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은 그저 철없는 희망사항으로만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또한, 아무리 시대와 상관없이 꿈만 쫓아 사는 청년이라 해도 빼앗긴 조국의 정통 왕자의 대역인데, 역사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이 덥석 받아들이는 것도 어색해 보인다. 물론, 스토리 상에서는 청년이 가짜 왕자 역할을 하게 되기까지의 경위는 매우 빨리 지나가고 그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90% 이기 때문에 다소 빈약해도 큰 흠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진짜 왕자가 죽었는데도 죄책감이나 공포를 느끼기 보다는 자신이 계속 가짜 왕자 역할을 하겠다고 해맑게 주장하는 청년을 보면 좀 심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

   

이러한 몇 가지 개인적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즐겁고, 때때로 유쾌하고, 마지막 여운도 길었던 뮤지컬 <이채>.
리딩 공연의 한계 상 많은 부분을 건너뛴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극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정식 상연할 때에는 내레이션으로 처리된 급박한 장면들과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관계 변화까지 충분히 짚어줄 수 있는, 풍성한 무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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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AZIT 블로그의 <이채> 예고 포스팅 : http://blog.naver.com/cjazit/30113581289

뮤지컬 <이채> 리딩 공연 영상들 :
http://blog.naver.com/dr_cheese/100137627746
http://blog.naver.com/dr_cheese/100137666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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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도,로맨스는 있다-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

재밌는 것/영화


 
얼마 전, TV에서 프랑스의 아주 작고 오래된 시골 마을을 보았다.
그 마을은 정말이지 작아서 많아야 200명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고, 몇 백년 씩 된 건물들은 그 오랜 세월동안 몇번의 페인트칠과 수리만 더했을 뿐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그 안에 몇 대째인지 모를 사람들을 품고 있었다. 그 곳은 작은 대장간이 있고, 농장이 있고, 의사는 없지만 간호사와 시인, 화가의 집과 플로리스트의 가게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치 동화같은 마을이었다. 나와 부모님은 그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바라보며 저런 곳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고, 나름 있을 것도 다 있으니 불편하지도 않을 거고,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막상 그런 기회가 생기면 가족 중 아무도 거기서 살겠다고 나서진 않을테지만. 왜,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너무 아름답지만 결코 내 것이 될수 없는 것에 대한 거리감 같은 것. 손 닿을 곳에 있어도 손을 뻗지 않을, 그런 찬란함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의 주인공 프란시스 메이어스에게도 이탈리아에서의 삶은 그런 존재였다.

어느 날 갑자기 순조로운 줄만 알았던 결혼 생활이 남편의 외도로 막을 내리고, 친구 패티의 권유로 도망치듯 떠난 이탈리아 여행.
그곳에서 프란시스는 알 수 없는 어떤 운명 같은 것에 이끌려 '브라마솔레' 라는 낡은 저택을 사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낡고 여기저기 부서진 '브라마솔레'가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장소로- 친구들이 모이고 결혼식이 열리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그런 집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주인공 프란시스의 인간적인 성숙 및 치유과정과 교차시켜 보여주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살던 예전 집에서 책 상자만 두어 개 챙겨 도망치듯 떠나온 파리한 안색의 이혼녀는, 영화의 마지막에선 사람들의 떠들석한 웃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의 태양 아래에서 누구보다도 눈부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가 만약 "이탈리아 시골마을이라니, 낭만적이긴 하지만 내가 거기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 라고 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들.

그런데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단순히 프란시스의 일탈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고 행복해졌다-는 식의 전개로 이끌어 나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브라마솔레로 막 이사했을 때 프란시스의 심정은 '카오스' 그 자체였었으리라. 너무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정원에, 거미줄에, 고장난 수도꼭지까지. 아마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살겠다고 했을까?' 라는 후회를 몇백번은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프란시스를 좋게 본 부동산 중개업자의 소개로 폴란드 출신 인부들이 저택을 수리하러 들어오게 되면서부터 그녀의 삶은 아주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만난 이탈리아 청년과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영어를 할 줄 아는 폴란드인 남자애의 연애를 몰래 도와주기도 하면서 예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혹은 할 기회가 없었을 일들에 부딪히게 되면서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프란시스. 음울하기 그지 없었던 '브라마솔레'가 산뜻하게 단장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아름다운 커플의 결혼식이 치뤄지는 마지막 장면은 결국 삶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던 프란시스의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투스카니의 태양>의 가장 큰 테마는 상처입은  한 여자가 다시 자신의 빛깔을 되찾는 일종의 성장기, 또는 치유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야 그녀의 새로운 사랑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이 영화가 '새로운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평생을 함께할거라 믿었던 배우자의 배신이 준 깊은 상처와 공허감을 안겨준다고 해서 한 사람의 삶이 반드시 망가지리라는 법은 없다고, 어떤 헤어짐으로 인해 열리는 다른 세계도 있다고, 한 세계에서 얻은 상처에 대한 치료약은 다른 세계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이젠 정말 끝' 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것도 있다고, 내가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이 나를 구원해 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정말 저런 곳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아, 라는 찬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눈부신 이탈리아의 풍경은 덤.
이 가을, 약간은 메마른 감성을 촉촉히 적셔줄만한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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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9/11 테러의 진실은 무엇인가? <Loose Change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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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올해 9월 11일엔 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LOOSE CHANGE 2nd Edition> 
 

흔히 '9/11 음모론 동영상' 으로 많이 알려진 이 다큐멘터리는, 사실 대놓고 9/11이 조작된 것이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단편적인 뉴스들, 공식적인 해명과 전문가의 의견들, 목격자들의 증언과 비디오, 사진을 토대로
9/11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해명과 그 후의 대처에는 분명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작자의 주장은, 그가 수집한 수많은 증거들을 볼 때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사실들. 

1. 국방부 고위 직원들 대다수가 9월 11일 아침에 예정된 비행계획을 취소한다.

2. 샌프란시스코 시장 윌리 브라운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로부터 9월 11일 비행기를 타지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3-1. 보잉 757기가 펜타곤에 충돌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실제 현장 사진에서는 대부분의 비행기 추락사고 현장에서 발견되는 엔진 등의 부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_http://elais.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4.uf@161A1D4D4E73709733F467.jpg%7Cwidth=%22480%22%20height=%22270%22%20alt=%22%22%20filename=%22911%20%ED%85%8C%EB%9F%AC%20%EB%A3%A8%EC%A6%88%20%EC%B2%B4%EC%9D%B8%EC%A7%80.911.Loose.Change.2nd.Edition.DVDRip.XviD-ConCen.avi_001324324.jpg%22%20filemime=%22image/jpeg%22%7C_##]


3-2.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여 파괴된 흔적은 실제 보잉 757기의 크기보다 너무 작다. 


3-3. 3-1,3-2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은 충돌로 인한 고열이 비행기를 증발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정도의 고열이었다면 189명의 희생자 중 184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_http://elais.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10.uf@111A1D4D4E737095301295.jpg%7Cwidth=%22480%22%20height=%22270%22%20alt=%22%22%20filename=%22911%20%ED%85%8C%EB%9F%AC%20%EB%A3%A8%EC%A6%88%20%EC%B2%B4%EC%9D%B8%EC%A7%80.911.Loose.Change.2nd.Edition.DVDRip.XviD-ConCen.avi_000977310.jpg%22%20filemime=%22image/jpeg%22%7C_##]
4. 보잉 757이 펜타곤에 충돌한 당시 목격자들이 경험한 은빛 섬광과 강한 충격파는, 비행기의 충돌로는 일어날 수 없다.
5. 보잉 757은 펜타곤에서 충돌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설계된 유일한 구역에 와서 부딪혔다.




6-1. 비행기와 충돌한 수많은 건물 중 충돌에 의해 흔들리면서 전체가 붕괴되어 무너져내린 건물은 WTC가 유일하다.
      즉, 일반적으로는 충돌한 층이 부서져도 건물 전체는 비교적 무사하다.  

 [##_http://elais.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6.uf@191A1D4D4E737098351B3C.jpg%7Cwidth=%22480%22%20height=%22270%22%20alt=%22%22%20filename=%22911%20%ED%85%8C%EB%9F%AC%20%EB%A3%A8%EC%A6%88%20%EC%B2%B4%EC%9D%B8%EC%A7%80.911.Loose.Change.2nd.Edition.DVDRip.XviD-ConCen.avi_001955722.jpg%22%20filemime=%22image/jpeg%22%7C_##]

6-2. WTC가 붕괴되는 모습은 폭파공법을 사용한 건물해체 현장과 매우 유사하다.
6-3. 비행기가 충돌한 층에서 좀 떨어진 다른 층에서 빛과 함께 두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_http://elais.tistory.com/script/powerEditor/pages/1C%7Ccfile25.uf@121A1D4D4E73709937E640.jpg%7Cwidth=%22480%22%20height=%22270%22%20alt=%22%22%20filename=%22911%20%ED%85%8C%EB%9F%AC%20%EB%A3%A8%EC%A6%88%20%EC%B2%B4%EC%9D%B8%EC%A7%80.911.Loose.Change.2nd.Edition.DVDRip.XviD-ConCen.avi_003130163.jpg%22%20filemime=%22image/jpeg%22%7C_##]


이 Loose change에서는, 위에 언급한 사실 외에도 정부의 공식 답변 중 상식이나 과학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해명을 요구하며, 그 요구는 타당해보인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는, 적어도 상식인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요구하는 태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실제로 9/11테러가 정부에 의해 조작되었든, 아니면 단지 방관했을 뿐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 국민은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부디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진실을 밝히고 수많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늦게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Loose change 공식 웹사이트 http://www.loosechange91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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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결말, <소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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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 리뷰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카고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깨어난다. 그리고 맞은 편에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당신의 말을 듣기로 했어요. 좋은 조언이었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그는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션 펜트리스라는 교사가 아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콜터 스티븐스 대위. 그는 중동에서 작전을 수행중이던 자신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그리고 황망하게 주위를 살피던 중, 열차는 폭발하고 콜터 대위는 어떤 어둡고 추운 캡슐 안에서 다시 눈을 뜨는데.. 캡슐과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는 작은 스크린을 통해 지시를 내리는 여성 오퍼레이터 굿윈 뿐. 그녀는 끔찍한 열차 폭발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앞으로 6시간 후에는 시카고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콜터에게 주어진 임무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 열차의 상황으로 돌아가 '열차에 설치된 폭탄의 위치와 폭탄범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결말에 SF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인셉션과 자주 비교가 되고 있는 소스코드. 그러나 나는, 복잡하긴 하지만 애초에 영화 내에서 구축된 설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알기 쉬웠던 인셉션과는 달리 '고도의 양자역학' 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소스코드의 결말을 도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1) 다른 사람의 기억에 접속한다. 2)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는 이 두 가지 현상을 다중우주론 안에서 설명이 가능한걸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스코드'가 어떤 기술인지 알 필요가 있다.

'소스코드'를 만든 러틀리지 박사는 그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 사람은 죽은 후에도 죽기 전의 8분의 기억을 잠시 유지할 수 있다. 
-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는 수많은 평행 우주가 존재한다.
- 따라서 우리는 션 펜트리스라는 인간이 아직 죽지않은 시공간으로 너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대충 '그것은 매우 고도의 양자역학이라..' 며 넘어갔지만, 이미 '기억'이라는 개념이 '평행우주'라는 개념과 합치되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인간의 기억은 이미 그 시점에서 경험한 고정된 현실에 대한 개인적 기록인데, (아무리 기억이 가변적이라고는 하나 외부적 암시나 왜곡 요소가 없는 이상 자동적으로 전혀 존재한 적 없는 사실에 대해 기억을 조작할 수는 없다.) 콜터가 션 펜트리스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콜터 자신의 행동에 의해 주위 환경과 인물들의 대응이 달라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또한, 단기 기억이 죽은 후에도 얼마간 유지된다는 설정이 사실이라면 이미 같은 우주 안에서 8분의 시간이 여러 번 지난 시점- 대충 한 시간 넘게 지났다고 치자- 라면 더이상 션 펜트리스의 기억에 접속할 수 없어야만 말이 된다. 어차피 이미 8분이라는 시간은 심리학에서는 장기 기억의 영역으로 다루거니와, 같은 우주 안에서 이전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시간 여행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소스코드가 결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고 단언한다. 이 모든 팩트를 끼워맞추려면? 1) 소스코드 안은 누군가의 기억 속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가상세계이다. 2) 콜터는 굿윈 등의 조작에 의해 그 가상세계(소스코드) 안에서 그와 가장 상성이 잘 맞는 개체인 '션 펜트리스' 안으로 의식을 '전이', 혹은 오컬트식으로 말하면 '빙의' 할 수 있다. 3) '션 펜트리스'는 소스 코드 안에서 다른 세계의 인간의 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샤먼'같은 매개체 역할만 수행한다- 고 본다면 대충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지막 결말 부분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단 위키백과에서 찾아본 다중 우주론의 핵심은 아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발생한 사건과 조건에 의해 갈래가 나뉘어 무한한 수의 평행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
② 평행한 다른 우주는 우리 우주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즉, 한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른 우주와 무관하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또다른 평행우주든 가상세계인 소스코드든 그 안에서의 사건이 현재 콜터가 소스코드에서의 사망 후 계속 되돌아오고 있는 우주(귀환우주)에는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 장면과 그것이 암시하는 바를 한번 생각해 보자.

- 러틀리지 박사는 "오늘 아침에 열차 테러 미수가 있었다" 는 보고를 받고 있다.
     → 박사가 콜터를 소스코드로 보내 테러를 막은것이 아니다.
- 콜터를 소스코드로 다시 보내고, 생명 유지 장치를 멈춘 굿윈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했다. 
     → 굿윈은 콜터를 소스 코드로 다시 보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막 출근했기 때문에, 그 열차 안의 상황으로 콜터를 보낸 적도 없다고 볼 수 있다.  
- 굿윈에게 콜터의 문자가 도착한다.
     → 영화초반부에 러틀리지 박사는 '소스 코드 안에서 전화를 걸면,그 안의 또 다른 러틀리지 박사가 전화를 받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의 결말에서 굿윈이 문자를 받은 세계와 콜터가 문자를 보낸 세계는 동일하다는 말이 된다.

갑자기 닥친 어리둥절한 이 상황이 대체 왜 발생했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소스코드는 러틀리지 박사가 생각한 것처럼 고정된 데이터화된 세계가 아니라, 관찰자(콜터)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또 다른 평행우주에 더 가깝다. 그래서 관찰자가 현실에 개입하면 개입할수록 (개그맨에게 내기를 건다던지, 크리스티나를 구한다던지..) 그 시점에서 콜터가 있는 우주에서는 또 다른 평행우주가 많은 갈래로 계속 펼쳐지게 된다. 귀환 우주(소스코드에서의 죽음 후 콜터가 돌아가는 우주)에서 파견 우주 (테러가 일어나기 8분전의 우주)는 항상 시점만 동일할 뿐, 콜터가 도착하는 순간 다른 평행 우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귀환 우주에서의 콜터의 미션을 생각해보자. 때는 이미 열차 테러는 일어나고 6시간 후로 예고된 시카고의 방사능 테러를 막아야 하는 시점. 콜터의 미션은 열차로 돌아가 폭발물의 위치와 폭파범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견 우주에서 콜터는 열차 테러를 '막았다.' 따라서 콜터가 열차 테러를 막은 시점에서 열차 테러가 이미 일어났었던 귀환 우주는 소멸하고, 파견 우주를 비롯한 그 외의 평행 우주만 남는다. 귀환 우주에서의 굿윈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마지막 결말은, '션 펜트리스'라는 교사가 열차 테러를 막고 경찰에 신고해서 폭파범을 체포하고 크리스티나와 공원의 조형물을 보러간 파견 우주에 존재하는 굿윈이 문자를 받은 상황을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 파견 우주에서, 보고를 받은 러틀리지 박사는 왜 다른 부하에게 "그녀를 잘 감시해"라고 했는가.
    (굿윈이 명령을 어긴 사실을 알고 있다?)
▷ 콜터가 두 개의 우주를 넘나들 때마다 보이는 공원의 조형물과 크리스티나의 모습은 무슨 의미인가.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션 펜트리스의 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다른 우주의 존재가 또 다른 우주의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이 외에도 전공자도 아닌 (단순한 SF 애호가;) 인 내가 생각한 위의 미흡한 설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있을법 하지만,
일단 설정 자체가 영화에서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개인적인 의문만 제외하고 아무 생각없이 보면 제법 재밌게 즐길 수 있을만한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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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결여인간,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 탄생한다 <고백>

재밌는 것/영화




영화 <고백>.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오프닝.
좁은 교실안에서 13살짜리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야유하는 가운데 목소리 한번 높이는 일 없이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교사 모리구치 유코는 문득, 한 마디 던진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그녀의 말은 전혀 고백같지 않았다. 고백이란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을 때 성립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실상 그녀는 학생들 중 아무도 보고있지 않았고, 누군가가 들어주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복수를 하고있었다. 일견 평온해보이는표정 안에 미칠듯한 격정과 분노와 슬픔을 가둔 채. <유명해지고 싶어서>라니,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자신의 어리고 약한 딸이 목숨을 잃어야 했었나. 하지만 영화가 계속 되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일렁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직접 소년 A, B에게 벌을 가하지도 않는다. 살인자로 낙인 찍힌 두 소년에게 학교가,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가하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이었다. 사실- 소년 A와 B가 사이코패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따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타인의 고통에 둔감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걸 모두 제쳐두고라도 영화에 나타난  두 소년이 전혀 '낯설지 않음'에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다.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창조성이 빈약하다거나 아이디어가 진부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상상할 수 없다. 자신으로 인해 만약 참극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그 상실과 상처가 가져오는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따라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슈야와 나오키는 마나미의 죽음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행동이 '살인'이라는 것. 한 소녀가 죽으면, 그 어머니가 지독하게 슬퍼하리라는 것 따위는 모른다. 그들이 관심있어 하는 건 오직 자신에 대한 것-자신의 어머니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지, 내가 이 녀석을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정도 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면 미즈키가 슈야를 구원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사랑을 믿게하고,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만들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학원 드라마같은 진부한 엔딩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기우였다. 슈야가 미즈키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나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살해한 어떤 대학의 학생들을 떠올렸다. 비록 살의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슈야와 학생들의 결정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타인이, 혹은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그 타인이 부모님일수도, 친구나 동료일수도, 혹은 세상의 시선일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기준으로 삼을만한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주어진 길은 하나 뿐이었다. 공부하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것. 사실 각오하고 뛰어든다면 가능한 길은 더 있었겠지만,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성과' 였다. 불행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질적으로 졸업한 대학에 의해 사회 서열이 갈리고, 연봉이 바뀌고, 생활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네 꿈을 펼쳐라" 라고 한들 누가 순순히 따를 수 있겠는가. 어떤 꿈을 꾸건 개인의 자유지만, 그 말은 마치 '개성있는 인재'를 원한다는 기업의 표어처럼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다.  돈이 되지 않는, 아무도 사주지 않는 꿈을 꾸는 자의 종말은 어쩌면 죽음이 될 수 있다는 걸-불행히도, 우리는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준 미달'이라는 선고가 생존 위협으로 직결되는 사회에 살고있다. 그래서 "누구도 내게 동물을 죽이는 것이 나쁜 일이라고 한 적이 없었다" 는 슈야의 독백은, 충격적이지만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벌어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 또한 원한다. 그래서 현재 학교 교육의 대부분은 부모가 원하는 이러한 인생루트에 자신이 담당한 학생이 순조롭게 편입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원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에게는 똑같은 길이 주어지고, 가장 이상적인 삶의 표본을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 이라는 인성은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평가할 수 없다. 평가할 수 없으면 보여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고. 따라서, 모든 학습과 교육은 '보이는 것'을 우선으로 정렬된다. 학생은 물론, 부모도 교사도 학교도 학생의 '성적'으로 평가받는 이상 성적이 아닌 모든 요소는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효율적'인 성적 향상을 위해 모든 자원은 수치화 할 수 있는 척도를 상승시키는 데 투입된다.이렇게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에만 점점 능숙해진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열심히 말을 한다. 진심을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말이란 것이 항상 진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괴리. 그리고 '보이는 세계'에 사는 결여인간. 나오키와 슈야는 그 곳에서 탄생한 현대의 새로운 괴물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들이 '괴물'로도 느껴지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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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배우가 연기, 노래는 물론 직접 악기까지 연주한다? 뮤지컬 <모비딕>

재밌는 것

뮤지컬 <모비딕>
2011. 2. 26 (토) 오후 3시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뮤지컬 <모비딕>은 배우가 노래, 연기는 물론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액터-뮤지션 (Actor-Musician) 뮤지컬이다. <모비딕>은 배우들과 악기가 한 몸이 되어 각각의 캐릭터들을 표현하고 주요 무대 장치의 역할과 음향 효과까지도 직접 표현하여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관악기 리드, 퍼커션등 다양한 악기가 등장,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 <모비딕> 작품 설명 中-

뮤지컬 <모비딕>.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상당히 괜찮았다.
(특히 이번 주에 본 <씨저스 패밀리>에 비하면..!! ㅠㅠㅠ)
일단 모비딕의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으니 내용은 패스하더라도, 우선 배우가 노래하면서 악기도 연주한다는 컨셉 자체가 나름 여성 관객의 로망(?) 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좋았고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 만으로 푸른 바다나 펍, 여관같은 배경을 표현해 나가는 방식이라 상상의 여지도 있고 배우의 표정이나 몸짓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배우들 !! 생존자이자 기록자인 이스마엘 役의 신지호 배우!!!
얼굴도 작고 팔다리도 길고 가늘고 무엇보다 정말 귀엽다!!! >ㅁ<
딱 어리고 다소 치기어린 해맑고 착한 소년 같은 이미지라 이스마엘과 잘 어울렸다 ^ ^
목소리도 미성이고. 그런데 피아노를 칠 땐 또 어찌나 잘 치시는지...-////- (피아니스트니까 당연한가;)
그 여리여리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있는 때로는 애수띤 피아노 사운드!
퀴퀘그 役의 이일근 배우도,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시종일관 무표정이었지만 덕분에 오히려 몸짓이나 연주로 표현하는 퀴퀘그의 캐릭터가 더 잘보였다.바이올린도 켤 때 멋있으심..하하:D
스타벅 役의 이진우 배우는 좀 아쉬웠다.
큰 키에 매력적인 마스크의 소유자로, 외적인 부분에선 캐릭터의 냉철함을 살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나 데뷔무대라 그런지 딕테이션이 부정확해서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에이허브 선장과 대립하는 인물이니만큼 선장과 대화하는 씬이 많았는데 노련한 에이허브 役의 황건 배우에 비해 감정 표현이나 연출 부분에서 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연기-연주 양면에서 고른 실력을 보여준 것은 플라스크 役의 유승철 배우 정도? 다혈질이지만 넉살 좋고 기분파인 플라스크라는 인물의 특징을 잘 나타냈고,트럼펫이라는 악기도 인물과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다만 약간 걱정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나 연주 실력이야 정식 오픈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연습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쳐도
뮤지컬 <모비딕>이 표방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형식이 과연 유용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충분한 대사를 통해 관객에게 현 상황과 감정 변화에 대해 인지시킨 후 감정이 고조 되는 부분을 노래로 표현하던 지금까지의 뮤지컬과는 달리<모비딕>의 관객은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효과음 같은 부분까지 배우가 연주로 표현하다 보니- 모비딕이 등장하거나 먹구름이 밀려오는 씬 같은 부분은 신선하긴 했지만- 명백한 대사 전달이나 제 3의 인물을 통한 상황 설명이 없는 이상 관객은 음악을 듣고 장면 장면의 심각도나 깊이,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까지 추리해내야 한다. 그리고 악기를 들고 있으니 배우들의 연기 폭에도 제한이 생긴다. 각 악기가 인물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관객 입장에선 단지 추측할 수 밖에 없는 문제고, 애초에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과 대사나 연기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니 배우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형식에 그저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제법 참신한 시도라 재밌게 볼 수 있었고, 좋은 곡 넘버도 많아서 마치 '테마가 있는 콘서트'에 온 기분으로 즐겁게 보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찾는 이라면 괜찮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 

6월에 정식 공연이 오픈하면 한 번 더 찾아가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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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좋은 아내의 조건이란? <the GOOD WIFE>

재밌는 것/드라마



최근 안 좋은 일이 겹친데다 대학원 수업 네 과목을 듣다보니 유난히 지쳐서-_)
에라 모르겠다 제일 잘나가는 드라마를 보자..!!!!! 하고 고른 것이 바로 이 드라마, <굿 와이프 the GOOD WIFE> 입니다.
처음에 추천받았을 때는 특이한 제목에- 아니 단어 자체는 특이하진 않지만 드라마 계에서는 제법 특이한 제목에
무슨 내용일까 굉장히 궁금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능력있는 남편을 열심히 뒷바라지 해서 성공시키는 내조의 여왕같은 내용일까요?
아니면 의외로 자신의 도움으로 출세했지만 바람을 피우는 남편에게 복수하는 미국판 아내의 유혹?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드라마는 절대로 남편에게 얽매여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그런 여자의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물론, 남편이 계기이긴 했지만요.

이분이 바로 주인공 알리샤 플로릭의 남편 되시는 분입니다. 피터 플로릭.

그녀의 남편,피터 플로릭은 주검사(State attorney)로 일하던 분이십니다.
강한 검찰을 외치며 빡시게 일해서 이 분의 근무 기간 동안 범죄율이 많이 하락했다고 하더군요.
지위도 지위지만 인간적 매력이 있어 법조계에서도 꽤 명망있는 인물인듯. 
그런데 드라마의 첫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합니다.  
섹스 스캔들에 연루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매춘부들과 잔 건 부인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생활의 문제일 뿐,
절대로 불법 자금이나 성상납을 받고 형량을 협상해준 적은 없다고 말입니다.


퇴임 기자회견을 하는 남편의 옆에서 눈물 젖은 눈으로 서있는 여자가 바로 주인공, 알리샤 플로릭.
그녀 자신도 15년 전엔 꽤 촉망받는 변호사였지만, 남편의 내조와 아이들의 양육을 위해 일을 그만뒀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섹스 스캔들에 휘말리고, 그녀는 남편의 정치적 포장을 위해, 그러니까 아직 아내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이 때의 인상은 정말 부유층의 고상한 여성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머리 좀 했다고 인상이 이렇게 바뀌나 !! -ㅁ-
훨씬 세련된 느낌의 알리샤입니다.
남편이 일단 구속 수감된 사이, 그녀가 아이들과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친구인 윌 가드너가 이사로 있는 로펌
스턴,록하트&가드너에 신입 변호사로 들어오게 된 거죠. 아직 정직원은 아니고, 다른 신입인 캐리 아고스와 함께 경쟁해서
포지션을 따내야 하는 상황.


이 분이 친구인 윌 가드너씨.
처음엔 잘생긴건가..? 하고 좀 의아했는데, 계속 보다보니 변호사 풍으로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대학시절부터의 친구로, 알리샤와 사실은 약간 미묘한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우정 이상 사랑 이하랄까~


이 여자분은 로펌의 또 다른 파트너, 다이앤 입니다.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깐깐할 것 같지만 (실제로 알리샤를 별로 맘에 들어하진 않습니다)

의외로 일할 땐 쿨하고 합리적입니다.

처음 봤을 땐 '뭐야 이여자~?!' 싶었는데, 또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는 나름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얘가 알리샤의 라이벌인 캐리 아고스.
인상이 약간..미쿡의 이승기?-_) 같습니다.
알리샤에게 친절하긴 하지만, 사실은 친절함을 가장한 비아냥을 내뱉곤 하지요.
좋은 변호사라는 평판이지만..알리샤가 사건에 직접 뛰어들고 의뢰인들과 깊은 교감을 하면서 변호하는 스타일이라면,
캐리는 논리적이고 언변이 좋지만 기본적으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약간..재수없는-_- 로스쿨 모범생..;;


이 사람은 칼린다. 알리샤가 일하는 로펌의 조사원입니다.

예전에 피터 플로릭의 사무실에서 일하다 해고당했다고 본인 입으로 알리샤에게 밝히지요.
하지만 조사원인만큼 발도 넓고, 터프하고, 기본적으로 쿨합니다.
알리샤와는 곧 친해져서 이것저것 도와주게 되지만..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피터를 고발한 그의 정적들과 피터, 그리고 알리샤 본인 등의 사이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컨택이 들어온 상태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니 인도계 배우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건 처음 본 것 같네요. 예뻐요~^^

수감된 피터. 기자회견때보다 좀 부드러워진 인상이네요.

알리샤가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재판이나 합의를 통해 승소 or 패소하는 것이 각 에피소드의 기본적인 줄거리이지만, 
드라마의 큰 흐름은 '누가 피터를 모함했고, 그를 모함한 정적들 뒤에는 어떤 배후세력이 있는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미 season 1 은 끝난 상태이지만 비밀은 별로 드러난 게 없군요. 
과연 다음 시즌에 드러나긴 할지..;;;
아무튼 법정 드라마이긴 하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 며느리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알리샤의 일상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고, 잘 자라는 것만 같던 아이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휘말린 사건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지를 보는 것도 스릴 넘칩니다.
그냥 안온한 변호사의 하루 같은데, 조금씩 꼬여가는 상황이 어찌나 두근두근거리는지 !!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추천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

 

예쁘고 당당한 그녀, 알리샤 플로릭


시즌 1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끝났으니,
이제 시즌 2를 보러가야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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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눈부신 청춘의 댓가는 정말 아픔 뿐일까- <소라닌 ソラニン>

재밌는 것/영화


<소라닌>의 첫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허니와 클로버>를 떠올렸다.
눈부신 햇살,푸르른 하늘과 그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듯한 캠퍼스의 풍경,
티없이 맑게만 보이는-꾸밈없는 미소의 타네다와 메이코, 그리고 친구들.
그러나 <소라닌>은 그저 순수한 청춘이 아름답다고,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게 하는 걸로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떻게 그 아름다운 시절이 사라져가는 지-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다.

타네다와 메이코는 대학의 경음악 동아리에서 만난 커플이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 메이코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타네다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 달에 두 번 밴드활동을 하는, 이른바 프리타.
어느 날 , 오기로 회사를 그만 둔 메이코는 타네다에게 말한다. 지금처럼 어정쩡한 생활은 접는 게 어떻겠냐고. 한번이라도 힘껏 최선을 다해 밴드 활동을 해보고, 그렇게 해서 실패한다면 그 때 다른 길을 찾으라고.
뭐- 많은 다툼과 곡절이 있었지만, 타네다는 어떻게든 '소라닌'이라는 곡을 레코딩하고 데모 테잎을 TV 프로그램이나 음반사 등등에 보낼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마저 그만두고, 나름대로는 정말 최선을 다한 파이팅이었다. "현재 내가 가진 전부"를 걸고 맺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데뷔 계획은 보기좋게 무산되고 만다.
연락이 온 음반사는 단 한 곳.
그나마 앞으로 가수로 데뷔할 모델의 백밴드로서.
그 건을 거절하고 나니 그 후엔 아무것도 없었다.
타네다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 모든 걸 걸었는데도,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래서 .....






나는 타네다가 바이크를 타고 돌아올 때의 그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메이코에게는 "아르바이트, 다시 시작했어. 이제 음악은 진짜 취미로 할거야!" 라고 밝게 이야기 했지만, 
스스로가 자신에게 세뇌하듯 되뇌었던 "행복하다"라는 말에 자꾸만 "진짜?" 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그. 

좋아하던 음악에서 최고가 될 수 없는데,
네가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데, 
앞으로 쭈욱- 평범한 일상이 이어질 것을 알고있는데, 
너는 이대로 행복해? 
정말로 행복해?

아마 타네다라면, 살아있었다면 평생 그런 회의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타네다는 그의 죽음으로써 메이코의 남은 생을 바꾸었으니, 그녀에겐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나 타네다 처럼 '평범'한 삶에서 해낼 수 있는 '특별'이란 그 정도 일지도 모른다. 
수천 수만명의 귀를 즐겁게 할 수는 없어도 단 한 사람을 위한 직구를 던질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가 우리가 해낼 수 있는 '특별'한 일이었는데, 그나 나나 너무 욕심이 과했는지도 모른다.
나만은 다르다고. 나에겐 영화같은 행운이 찾아올거라고. 나는 정말 '특별'하다고 말이다.
「사랑을 이어주는 노래 」라는 게 광고 카피 지만, 나에게는 이 영화가- <소라닌> 이라는 노래가 사랑을 말하는 걸로는 들리지 않는다.
이제 막 뜨거운 현실 앞에 내동댕이쳐져 부서져 버린 멋모르는 시절의 잔해를 밟고, 눈물범벅인 얼굴로라도 다시금 일어선-더이상 소년소녀가 아닌 새로운 청춘들의 목소리가 내게는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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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영국 근대회화전 . 예술의 전당 (2010.8.12)

재밌는 것

8월 초에 갑자기 연락도 없이 소포가 띡 왔길래 뭔가 했더니, 
오잉, 주문한 것도 없는데 뜬금없이 교보문고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박스 안에는 이런 것이 !



그렇습니다.
가끔 뽑기 운은 있어도, 당첨 운 만은 겁나게 없는 -_-;; EL良이 최초로 온라인 이벤트에 당첨된 것입니다.
응모를 했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하지만 (__) 아무튼 당첨 되었다니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고마워요 교보문고 !! :D


일반 입장 가격은 11,000원이더라고요.
기쁘게 춤을 추며 모 양과 가기로 약속을 하고, 방문 당일.
(비록 고냥이 아가들이 방에서 뛰어놀다가 티켓 한 장을 어디론가 보내버려 한 장은 사긴 했지만 ㅠ)

못 보던 사이에 예술의 전당 지하에 까페랑 레스토랑이 생겼더라고요 ~ 찐한 커피를 우선 한잔 하고 !



터너에서 인상주의까지, 영국 근대 회화전에 입장 ~


우와, 간만에 간 전시였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
우선 예전 마티스나 샤갈 전은 좋기는 한데..난해해서 느낌이 별로 안좋았는데,
이번 영국 근대 회화전엔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들이 가득해서 행복했습니다.

좋았던 그림 중에 몇 가지 메모 .

 
-제임스 베이커 파인 <코블렌츠와 에렌브라이트슈타인>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조지 클라우슨 <봄날의 아침 , 하버스톡 힐>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존 윌리엄 고드워드 <물고기가 있는 연못>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토머스 시드니 쿠퍼 <양떼>

이것은 회장 밖에서 찍은 벽면 사진. 양떼 귀여워요 !




-엘리자베스 아델라 포브스 <장,잔, 그리고 자넷>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데이비드 로버츠 <발렌시아의 미겔레테 종탑>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에드워드 에킨슨 호넬 <봄맞이>

출처: 영국 근대회화전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tish2010.kr)


 
-에드워드 윌리엄 쿡 <발렌티아 만, 아일랜드>
-터너 <맘스베리 수도원의 폐허>
-헨리 조지 하인 <늪지대에서 바라본 서식스 지방의 앰벌리 성>
-노만 윌킨슨 <복스>
-메리 엘리노어 브릭데일 <애빙던의 빈민 구호소>
-앙리 가스통 다리앙 <파리의 케 말라케>
-로라 알마 타데마 <매사냥>
이 외에도 멋진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

날씨 안좋기로 유명한 영국 답게 , 그림에도 대부분 풍랑이 치는 파도나 먹구름 가득한 하늘 같은 풍경이 많았지만
그래도 간만에 마음이 따스해 지는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D


9월 26일까지고, 입장료도 의외로 (!!) 저렴한 편이니 나들이 겸 한번 들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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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한 사람의 신념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재밌는 것/영화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


라고 한다면, 무슨 마크로스도 아니고 그런게 어딨냐며 코웃음 칠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여기 베네수엘라에는 이미 35년 전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베네수엘라의 음악학교, 엘 시스테마 EL SISTEMA의 창립자 호세 구스타프 아브레우 박사이다.
사실 <기적의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는 영화라기 보다는 아브레우 박사가 가졌던 신념이 베네수엘라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그가 만든 엘 시스테마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희망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더 가깝다. 
영화는 한 소년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살기 싫어요. 너무 위험해요. 식구들이 돌아올 시간에 총격전이라도 나면 혹시 돌아오지 않는게 아닐까 늘 걱정해요."

그렇다. 
베네수엘라는 1인당 GDP가 1789달러 정도이고, 범죄율만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였다. 
그런 조국을 본 베네수엘라의 전 문화부 장관이자 경제학자, 그리고 오르가니스트였던 호세 구스타프 아브레우 박사는 청소년을 위한 음악 학교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왜 하필 음악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단순하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음악은 감성을 자극하고, 그것을 표현하게 해준다. 또한 오케스트라를 하면 협동과 단결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춤과 노래를 사랑한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 ..뭐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한 사람의 신념에 공감한 몇몇 어른들이 모여 1975년, 한 허름한 차고에서 11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를 거쳐간 학생은 현재 4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35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범죄율은 60% 가까이 떨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갱단이나 마약, 혹은 포르노가 넘치는 거리 이외의 선택권이 별로 없었던 아이들은, 이제 <엘 시스테마>에 다닌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부모들이 <엘 시스테마>를 반긴다. 간단한 오디션을 통해 입학한 아이들은 3~5개월 정도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종이로 만든 악기를 사용하는 '종이 오케스트라'에서 합주의 기본적인 내용을 배운다. 실제 악기를 쥐게 되는 것은 그 다음. 허름한 옷을 걸친 아이들이, 악기를 쥐고 오케스트라에서 각자의 자리에 앉을 때면 어찌나 빛이 나던지. 기껏해야 16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나이의 여자애가 나름의 방식으로 지휘 연습을 하는 것도, 12,13살짜리 꼬맹이들이 프로 급 실력으로 신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도 내게는 참 신선한 광경이었지만 엘 시스테마에서는 그것이 일상이다. 
엘 시스테마의 사무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정확하게 연주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악보에서 벗어나도 되고, 틀려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느끼는 것, 음악을 즐겁게 받아들여 그것이 자신의 몸 안에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아브레우 박사부터 실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운영하는 스탭들까지, 모두들 같은 신념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유된 '신념'이 35년만에 베네수엘라를 새로운 음악 강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영화 중간 중간에는 현재 지휘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LA 필하모닉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장면이 등장하는데,다른 격조 높은 - 전통있는 오케스트라의 공연과는 달리, 지휘자부터 연주자까지 춤추듯이 리듬을 타면서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중간에 파트별로 일어나 연주를 하거나, 트럼펫 연주자가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춤을 추기도 한다. 관객들도 몸을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며 호응하고 말이다. 이건 마치 아이돌이나 락 스타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 나는 이렇게 연주자를 포함한 모든 관객이 정말이지 신난다는 듯,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하는 공연을 본 적이 없다. 이래서야, 클래식은, 음악은 너무 재밌고 즐거운 것이라고 믿는 아이들이 계속 음악을 하게 된다면야 클래식계에서의 베네수엘라가 보여줄 미래는 여전히 창창하다고 믿어도 될 듯 하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184개의 <엘 시스테마> 센터가 있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보니 비록 감동적인 드라마는 없지만, 아브레우 박사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조국의 미래를 변화시켰는지,
믿음의 힘을 보고싶은 사람이라면-그리고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이제 구스타보 두다멜의 팬이 될 것 같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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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헤매고 있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뮤지컬 <싱글즈>

재밌는 것



카마타 토시오의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싱글즈> 를 처음 본 것은 아마도 2004년.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마침' 영화가 막 시작한 시점이길래,
잠시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나난의 단발머리가 예뻐서 따라해보고 싶었고, 나중에 수헌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막연히 상상했었고, 음, 그렇게 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스물 여덟번째 생일이 한 달 남짓 남은 2010년 7월.
뮤지컬로 다시 만난 <싱글즈>는 예전보다 더 진한 느낌으로 나에게 스며들었다.
스토리라인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 패스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의 선택이, 결정이, 그리고 그 다음의 가슴앓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손에 잡힐 듯 다가와 때로는 통쾌하게, 가끔은 가슴 먹먹하게 만들곤 했다. 
전에는 어린 마음에 도무지 이해할 수 가 없었던 동미의 선택도, (여전히 그 선택을 지지 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왜" 그런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굳이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공감 할 수 있었고,
그런 나의 변화에 스스로 신기해하며 나이먹음을 실감하였다-_-
그러니까 동미는 결국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선택을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생겼다, 라고 말했더라면 정준은 분명히 옆에 남아주었을 테니까. 떠나지 않았을 테니까.
임신 사실을 이용하여 사랑하는 '친구'의 결정을 번복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식으로 곁에 남아 자신을 지켜줄 친구의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정준이 동미를 이성으로 느끼게 되고 사랑한다 말했더라면 조금 달라졌겠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의 기준에서는 '친구'밖에 될 수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그렇게 편하고 코드가 잘 맞고 아웅다웅해도 결국 풀리고마는 그런 관계의 남자가 있다면 굳이 긴장이나 설렘이 없더라도,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을 것 같은데. 음. 
준수한 증권맨에 성실함과 매너까지 갖춘 매력남 수헌을 만난 나난을 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하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개인의 Core 라고 할까? 본인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을 자신 답게 하는 것,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공감이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헌은 '기다리는 건 자신있다'고 했지만, 그건 나난의 결정에 대한 존중이나 이해가 아니라 '그 결정을 굽히고 자신에게 돌아올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난이나 동미나, 앞으로도 자신의 인생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는-의존하는 형태의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녀들의 신념, Core와 맞지 않는 것이므로.
..하지만..그 남자, 수헌은 좀 아깝긴 하다 ㅠ 말 그대로 훈남인데 !!!! ..이제 와선 어쩔 수 없나. (__)

동미와 나난.
철 없던 시절엔 그녀들의 당당함이 그저 멋있어 보였었는데, 지금 와서는 만약 두 사람이 나의 친구나 동생이었다면, 다른 선택도 많다고-좀더 충분히 생각해보라고, 그렇게 설득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결정한 후엔 아낌없는 격려를 퍼부었겠지. 내가 할 수 없는 선택, 가지 못한 길에 용감하게 나서려는 거니까. 어렵고 힘들고 괴로워도 자기 자신과 타협할 수 없다고 그 가녀린 등 꼿꼿하게 펴고 살아가겠다는 당찬 그녀들이니까. 뮤지컬 <싱글즈>는, 열심히 발돋움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한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 자신에게 책임과 의무를 맡기는 세상에 아직 얼떨떨한 이십대와 삼십대에게 뜻밖의 선물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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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보다 감동적인 실화, <맨발의 꿈>

재밌는 것/영화


맨발의 꿈 공식 홈페이지(http://www.dream2010.co.kr/index.asp)

 

 

나는 스포츠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경기 자체가 싫다기 보다는, 반드시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져야한다는 승부의 세계가 두렵다.
특히 프로경기나 국가 대항전에서의 그 긴장감.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환희와 그에 대한 열광과는 반대로, 패배자에게 주어지는 비난과 조소.
그렇게나 승패의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보면 작은 마음의 소유자인 나같은 사람은 양 쪽을 조금씩 덜어서 적당히 균형을 맞추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비록 세상에는 내가 운동 경기를 보지 않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스포츠를 시작하고, 스포츠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응원하던 팀이 이겨도 상대편의 패배에 신경이 쓰이고, 지더라도 그저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은 안쓰러움에 고개 숙인 선수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그런 열의 없는 관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던 6월 말.
새까만 얼굴의 아이들과 그에 못지않게 까무잡잡한 얼굴의 한 사나이가 주먹 불끈 쥐고 있는 포스터의 영화, <맨발의 꿈>을 봤다.
동티모르? 어디였더라.
고등학교 때 구독하던 한겨레 21의 작은 기획 기사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아직 독립 전이었으니까, 아마 임시정부의 대표 누군가의 인터뷰 기사였던 것 같다. 전쟁이 일상인, 나와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의 작은 나라라는 인상이었는데. 그런데 영화에는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그 나라의 아이들이 있었다. 모래밭 위를 맨발로 달리며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
열 살 전후의 그 아이들은 할 일이 없어서 축구를 하고, 동무들과 놀고 싶어서 축구를 한다. 아이들의 꿈은 인도네시아 프로 축구팀에 가는 것이다.그들에게 축구란 놀이이자 삶이고,희망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이상한 한국인이 축구화를 든 채 흰 이를 드러내 웃으며 다가왔을 때... 그들의 희망은 현실이 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사를 하려는 속셈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라의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잃어버린 꿈을 보았을 때, 그-김신환 감독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공짜로 축구화를 대주고, 영양 실조 걸린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실명 위기에 처한 아이에게 눈 영양제를 건네는 김 감독. 아무것도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는 정말이지 돈키호테 (!!) 의 정신으로 무조건 밀고 나간다. 아이들을 히로시마에 보내겠다며 이리저리 뛰어다는 김 감독. 하지만 역시 항공료 조차 없어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그때 기적이 일어난 것은 결국 김신환 감독 자신이 일구어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영화가 영화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실화라는 것을 알고 가기는 했지만 나는 배우 박희순의 얼굴에 김신환 감독의 얼굴을 겹쳐보고 있었다. 2010년 6월이 아니라, 2004년의 그 뜨거운 햇볕 아래의 동티모르가 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어느 날 먼 나라에 홀홀 단신으로 떨어져 엉겁결에 유소년 축구단 감독까지 맡게된 그의 고단함이, 슬픔이, 그리고 감동과 희망이 대사 사이사이의 공백에서도 묻어나는 듯 했다. 아, 이것이 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이구나.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라 단순히 그러한 사실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영화였다. <맨발의 꿈>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2004 리베리노컵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한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추위 속에서도 분투한 그들이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었다는 것은 사실 사족에 불과하다. 
나는 그저, 전혀 관계없는 나라의 어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나라에 있었다는 것이 기쁠 뿐이다.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도 2004년의 실제 주인공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라고 하던데,
부디 잘 자라서 동티모르의 또 다른 아이들의 희망이 되어주길 바란다.



<관련 뉴스>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첫 국제대회 우승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4/04/009000000200404071949170.html

이영표, 동티모르 축구 꿈나무 후원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007021832183&sec_id=520501&pt=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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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모두가 미쳐버린 세상, 뮤지컬 <Jazz 루나틱>

재밌는 것


2010. 4. 10
대학로 루나틱 전용극장
윤선희/이기형/김세진/배성호/정준환

Synopsis
여기 세상에 하나뿐인 정신병동이 있다.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
그리고 매력적인 굿닥터가 반겨주는 이곳.
어째 그 분위기부터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제부터 우리는 '제 발로 찾아가기엔 두려웠던' 정신병동을 대놓고
엿보기 시작한다.
의사와 함께 등장한 4명의 환자
나제비, 고독해, 무대포, 정상인은 '집단 발표'를 통해
이곳까지 오게된 사연들을 공개하기 시작하는데..





간만에 만난 친구가 내 손을 꼬옥 잡고는 "루나틱을 아직 안봤으면 꼭 보도록 해!!!" 라고 하는 바람에
보게된 뮤지컬, <재즈 루나틱>.
알아보니 벌써 2004년부터 롱런하고 있는데다가 대학로에 전용극장까지 있단다.
뭔가 흥행 뮤지컬의 조짐이 보이는 바, 적당히 재밌고 웃기면 좋겠다~ 하는 기대로 공연을 보러갔다.

뮤지컬은 '루나틱 정신병동' 에 모인 4명의 환자가 각자 자기가 병원에 오게된 사연을 극 형식으로 다시 재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들의 이름에서 어느정도의 사연은 짐작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재즈루나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하나하나의 뮤지컬 넘버가 따로 들어도 될만큼 완성도가 높고, 배우들의 가창력도 수준급이라 우선 귀가 즐거웠다. 그리고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도 오버스럽지 않아 좋았고. 각자의 사연은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슬프지만,
코믹한 연기와 각종 소도구들과 분장, 과장된 대사 덕에 객석에서는 저러다 허리가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격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나 매력적인 인물은 굿닥터 윤선희씨. 환자들을 달래고 객석을 정리하는 모더레이터라는게 그리 쉽지 않은 역할일텐데, 파워풀한 목소리와 미모에 덧붙여 관객을 들었다놨다하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하여 극의 흐름과 긴장상태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쉬지않고 웃을 수 있었던 1부와는 달리, 2부는 정상인씨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전개된다.
신뢰하던 선생님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하고,자신에게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정상인의 고백-
사실은 그 뒤에 밝혀지는 진실이 재즈 루나틱이 공연시간 내내 준비한 반전이지만, 별로 놀랍지는 않다 ;;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정작 불만인 것은 재즈 루나틱이 던져주는 마지막 메시지이다.

"어차피 미쳐버린 세상, 당신도 오히려 살짝 미쳐버리면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부득부득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우기던 정상인씨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해서 세상이 미쳤다고 결론짓는 건 너무 억지스럽지 않나? 그야 스스로 '나는 정상이야'라고 생각하는 관객 모두에게 '사실은 당신도 루나틱일지 모릅니다'라고 넌지시 암시하는 것은 연출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그토록 다이나믹하게 극을 끌어온 것치고는 거기에 담긴 메시지가 다소 진부하고 결말을 위한 형식적 멘트같다. 클라이맥스여야 할 정상인의 사연이 그렇게 맥없이 끝나버리는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기대했던만큼의 사회를 비꼬는 통렬함이나 재치는 없었지만, 확실히 마음껏 웃고 즐길수 있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재미로 따지면 <형제는 용감했다> 보다..음.. 조금은 아래이려나?
그냥 아무생각없이 재미로 볼 수 있는 뮤지컬 정도로 생각하고 가면 딱 적절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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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그들이 꾸는 꿈의 가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재밌는 것/영화



왕은 백성은 버렸고 백성은 왕을 버렸다. 누가 역적인가!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정여립, 황정학(황정민 분), 이몽학(차승원 분)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고 친구는 물론 오랜 연인인 백지(한지혜 분)마저 미련 없이 버린 채, 세도가 한신균 일가의 몰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반란의 칼을 뽑아 든다. 한때 동지였던 이몽학에 의해 친구를 잃은 전설의 맹인 검객 황정학은 그를 쫓기로 결심하고, 이몽학의 칼을 맞고 겨우 목숨을 건진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 분)와 함께 그를 추격한다.

-네이버 영화 에서 발췌-



* 주의 : 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포스터를 보자마자 우와 차승원이 출연해? 황정민도 나와? 게다가 감독이 이준익이야!!! 하는,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두근거림과 함께 밤을 지새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영화이었기에, 당연히 부푼 기대를 안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의 오프닝을 지켜보았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견자'는 한마디로, 어른들이 혀를 차며 말하는 '요즘 애들' 같다.
서자라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차별받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세상과 제도에 대한 미숙한 분노를 드러낸다. 그나마 집안에서 자신을 감싸주는 아버지 앞에서도 감사의 말 한마디 못할 망정 그간 쌓인 울분을 거칠게 토해낼 뿐이다. 현 상황을 극복하거나 적응하려는 의지 없이, 단지 눈 앞에 놓인 현실에 붙들려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생각도 없는 어린애. 아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면 그가 어른이 되는 날은 매우 요원했겠지만, 이몽학의 칼에 아버지를 포함한 일가 친척들이 몰살당하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살려준 맹인 검객, 황정학과 함께 이몽학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여전히 어리고 서툰 견자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는 여전히 어린애이고, 복수복수라고 외치지만 계획따윈 세울 줄도 모르고, 백지 앞에서 당당한체 하다가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만다. 황정학과의 동행 중에 검술 실력은 좀 괜찮아 진 것 같긴 하지만 글쎄, 인간적인 면모에서는 아직도 초등학생 수준이랄까.그래서 마지막에 그가 이몽학에게 칼을 휘두를 때에도 거기에 어떤 의미나 상징이 담겨 있다기 보다는 '소 뒷발로 쥐잡은 식'의 요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역할의 비중(+출연 시간)으로 따지자면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한 단독 주연이라고 할만한 견자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라고 감독이 이야기했다).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감독이 의도한 바는 사실 이몽학과 황정학의 엇갈린 길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이몽학과 대로가 아닌 샛길이라도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이 좋다는 황정학.



영화에서는 이들의 '꿈'이 여러번 언급되는데, 잘못된 왕이라면 왕을 바꿔야 한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이몽학의 꿈은 그와 얽힌 모든 사람을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넣고, 결국 자신의 죽음까지 불러오게 된다... 아니, 아니다. 그의 꿈이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그가 텅빈 궁궐에 서서 꿈을 잃은 순간, 그는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달려와 도달한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다니. 그 때의 이몽학에게는 자신을 죽이겠다며 바득바득 달려드는 견자의 모습이 오히려 눈부시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너는 그 사람을 이길 수 없어. 왜냐하면 넌 꿈이 없으니까." 라는 백지의 선언은 오히려 이몽학에게 반대로 적용된 셈이다.



영상이나 연출 면에서는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정말 그림으로 그린듯 아름다웠지만, 나는 이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원작을 보지 못한 입장에서 함부로 평가하긴 좀 조심스럽지만, 영화만 보고 나서는 스토리라인 자체가 한 남자의 야심과 배신, 우정, 그를 향한 복수 등 어떻게 보면 무협이나 판타지에서 몇 백만번 각기 다른 스타일로 변주되고도 남을만큼 고전적인, 다시말해 다소 진부한 내용이다. 견자의 입장에서만 평면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인지, 가장 중요한 변수인 이몽학의 칼에는 세상에 대한 정당한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혁명가가 아니라 단지 야심가의 한 사람으로만 보여질 뿐이다. 또한 이몽학을 향한 사랑으로 견자를 따라 나서는 백지는 어떤가. 견자와 백지, 백지와 이몽학 사이에 뭔가 더 있을 법도 한데, 영화의 맛깔스러운 양념이 되었을만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없이 무작정 궁을 향해 달려온 기분이다. 그나마 맹인검객 황정학으로 분한 황정민의 연기만이 초점없이 밋밋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활력소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원작은,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난 견자의 성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몽학이 아니라 견자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더라면, <즐거운 인생>이나 <라디오스타>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서 삶의 해학과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는 이준익 감독의 장기를 좀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 반드시 흥행에는 성공할 법한 대작 영화이긴 하지만..이준익 감독이라기엔 뭔가 많이 모자라다.
        "감독님, 정말 이러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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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걸어도 걸어도 步いても 步いても>

재밌는 것/영화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 지.
세상에 '가족'만큼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고, 그만큼의 실망을- 혹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관계가 있을까 싶다.
애초에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닌데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같은 핏줄' 이라는 애매모호한 인연으로 묶인
<가족> 이라는 공동체는 사실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 강력하며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에 무겁게 얹힌 추 처럼 움직일 수 없는 족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 步いても 步いても>를 보면서, 그래서 나는 많이 아팠다.
죽은 장남의 기일에 모인 가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떠들고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한때- 집안의 중심이었던, 동네 의원이었던 아버지는 내내 겉돌고 있다. 아마도 자존심 때문이겠지만 가족들은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이고 다시금 그를 제외한 대화속으로 빠져든다.
첫 장면에서부터 어머니와 살갑게 대화하며 요리하던 딸은, 사실은 부모님의 집에 식구들과 함께 얹혀 살겠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입에서도 저 방은 내거라느니 다른 방은 공부방으로 쓸거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추억을 반찬삼아 쉼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어머니의 입에서는 끝내 들어와서 살아도 좋다는 허락은 떨어지지 않는다. 붙임성 좋은 사위와 손자들이라고 해도, 생판 타인을 자신과 가족의 공간에 들여놓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사람 좋아보이는 어머니의 본심. 
그리고 장남이 구하고 죽은 장본인을 매년 기일에 불러와 그가 잊고 살지 못하게, 일년에 하루정도 고통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음료를 대접하는 것도 어머니의 마음. 
차남은 어떤가 하면, 애딸린 이혼녀와 결혼한 것이 책잡히진 않을지, 자신이 실업상태 임이 들키진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의 아이에게 사촌들만큼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는 시부모가 야속하기만 하고.

가족이란 사랑 그 자체라고 말하는 홈드라마도 허다하지만
나는 사실 가족만큼 애정이 아닌 의무만으로 묶일 수 없는 존재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해야 하고, '가족인데도'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괴로워 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가.  
대체 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용당하고 이용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때로는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끊어버리고 홀로 세상에 나온 것 같이 표표하게 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마음을 먹어도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신기하다.
때로는 서로 싸우고 심한 말로 상처 입히고 씩씩대며 다신 보진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뒤돌아서면 미안하고 나 자신도 아프다.
이러지 말아야지, 잘해야지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고 그보다 더 큰 것을 받아놓고도 감사하다는 말 한번 살갑게 건네 본 적이 없는 주제에,
집에 돌아가는 길의 내 손엔 식구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가 잔뜩 들려있곤 한다.

아, 가족인가.
아파도 끊어버릴 수 없는 것, 어쩔수 없어도 안고 살아야 하는 것,그래서 사랑해야 하는 것이 가족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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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스타트라인에 선 세 사람, <제로 포커스 ゼロの焦点>

재밌는 것/영화



감독이 생각하는 '제로 포커스' 의 의미를 알려달라.

각본을 쓰면서 생각한 것은 일본이 다시 한 번 부흥운동을 일으키고 새로운 스타트를 끊을 때,
즉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후 다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고자 한 스타트라인을 제로라고 보았고,
포커스는 그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춘다는 의미로 생각했다.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해 스타트를 끊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 안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쓰모토 세이초가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누도 잇신과의 인터뷰 中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의 영 <제로 포커스 ゼロの焦点>.

비단 '이누도 잇신' 이라는 감독의 명성 때문 만이 아니라 원작자 특유의 칼로 베어내는 듯한 예리함과 통찰력에 대한 기대로 얼마 전 부터 주시하고 있던 작품이다. 주로 현대 사회의 마이너 계층에 포커스를 맞추었던 감독과, 격동의 1950~60년대의 핵(core)을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고발했던 거장의 만남은 어떨까. 그 생각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까 愛する人のすべてを知っていますか?> - 일본
<내 사랑이 위험하다> - 한국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의 포스터 카피를 미리 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만약 그랬다면 사라진 남편의 행방을 쫓는 부인의 탐정 놀이, 혹은 새색시가 남편의 불륜을 파헤치는 그렇고 그런 삼류 연애 소설 정도의 스토리라는 편견을 안고 영화를 감상했을 테니까. (실제로 리뷰나 평점에서는 그런 내용에 실망했다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사라진 남편-겐이치-는 조연에 불과하고, 그와 데이코와의 연애나 결혼도 일시적인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출신 배경도 직업도 전혀 다른 세 명의 여자가 시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사치코와 히사코에게는 미군 기지 근처에서 미군들을 상대하던 '팡팡걸' 이었다는 과거가 있다.
그리고 데이코의 남편인 겐이치는 그 시절 기지 주변 단속을 나온 순사였다. 비록 자의가 아닌 미군의 명령에 의해서였지만. 그렇게 만난 세 사람의 인연은 영화 속에서 대표적인 '구시대'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억나는 거라곤 슬픔과 설움, 절망, 회한... 그런 시대 속에서 만난 그 들의 인연은 그럼에도 곁에 있는 동료가, 친구가, 인간이기에 건넬 수 있었던- 한 움큼의 온기였다.그리고 이 영화의 비극은, 데이코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현재는 그런 과거를 뒤켠으로 밀어버리고 등장한 '신시대' 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사람이, 사람의 과거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몸 속이던 영혼 속이던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쌓여진 '경험'이라는 자아의 구성 성분은 그 인간 자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특히나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에 던져진 스트라이크 볼처럼 강렬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경우, 인간은 단지 그 과거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할애하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사치코와 히사코는 자신들이 지나온 그런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붙들려 있었다.
세 사람의 만남이 있고나서  몇 년 후, 영화의 배경인 가나자와에서 히사코는 겐이치와 재회하여 함께 살게된다. 내성적이지만 상냥하고 다정한 히사코는 자신들을 구해준 겐이치에게 왠지 모를 애틋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순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자신이 바라본 사회의 현실에 괴로워하던 겐이치 또한 히사코를 받아들인다. 과거를 공유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애정과 위로.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손을 내밀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편 부유한 사업가의 사모님으로 비즈니스에도 참여하고, 여성 정치인의 선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치코는 언뜻 어두운 과거를 전부 털어버린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다. 과거를 건너 뛴 현재 따윈 존재할 리가 없는 데, 팡팡걸이었던 과거를 도려내버리고 대학의 재기발랄한 재원으로부터 현재의 나날이 바로 이어진 척을 하고 싶었던 사치코. 그랬기 떄문에 히사코와 헤어지고 데이코와 결혼하게 되었다며, 찾아와 자신의 과거를 언급하는 겐이치 앞에서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데이코와 함께라면 새로운 시대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던 겐이치.
화려한 생활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잊고 싶었던 사치코.
과거의 인연을 현재로 끌어올려, 따스한 품을 손에 넣기를 원했던 히사코.
그리고.. 데이코.

데이코에게는 이제, 남편이 죽고 비밀이 밝혀진 현재가 과거사가 될 것 이다. 나는 그녀가 그저 명목상의 탐정 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치코 앞에서의 마지막 외침에 왠지,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나의 꿈을 짓밟았어 !"

데이코는 겐이치에 대한 사랑만으로 가나자와에 온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진중하고 다정한 남편이 있고, 아기자기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일상이 데이코의 꿈이었고, 겐이치는 사실 그 꿈의 주연배우였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밝은 희망을 꿈꾸다 결말을 맞은 세 사람처럼, 데이코가 꿈꾸었던 미래 또한 과거에 실려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녀는 과연, 이제 평생 품게 될 과거를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집에 돌아와 남편의 유품과 사진을 태우는 데이코를 보면서.. 나는 왠지 이 사람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의 남편이었던 사람은 이제 지나간 일로 받아들이는 여유로움이 보인다. 한없이 작고 가냘퍼보이지만 그녀는 나름의 방식으로 과거를 갈무리하고 다시 새로운 나날을 꿈꿀 준비가 되어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언뜻 현대로 보이는 웅장한 빌딩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인간이 시대를 만드는가, 시대가 인간을 결정하는가.
아마 개인 한명 한명의 삶은 그저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일수도 있지만- 파도의 조류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아닐까.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렇게 희망 섞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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