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ch and every,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Chaque jour est un adieu

서재

나는 자전적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직 젊은 작가일 경우 특히 그렇다.
이 경우, 그들은 각자 자신의 아픔을 껴안고 있으며,
그것을 토해낼 어딘가로 활자를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직 아물지 않은 아픔을 나에게 내보이면서,
어서 공감하라고, 나의 얘기를 들어보라고 다급하게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때로는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데도
그저 슬픈 얼굴로 나를 응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속삭인다.
끝없는 자기 연민과 혐오.
미처 삭지않은  감정의 살점이 뚝뚝 묻어나는 그런 글을 읽는 일은,
나에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니까,이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설 때까지
나는 이 책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었다는 얘기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골라 집어든 가장 큰 이유는
번역을 김화영씨가 했다는,그리고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 뿐이었다.
최근에 나의 뇌에 스며들어
빠져나가지 않는, 진한 여운의 무거운 책들에게서 질린 탓도 있었다.
그런 책들에 비하면 옅은 회색의 이 책은 너무나 얇고 가벼워 보였다.
알랭 레몽.
생소한 작가의 이름.
주간지 '텔레라마'의 편집국장이란다.
뭐야,슬슬 일에 질려 글을 써보려 한건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의 첫장을 넘겼다.

'어제 저녁, 이브가 트랑에 들렀다가 우리 집앞을 지나왔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그집에 지금 누가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나로서는 전혀 아는 바 없는 일이다.그 집이 언제 팔렸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다.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것 같다.나는 그런건 상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장 반 정도의 프롤로그를 지나,
소설은 화자의 어린 시절로 향한다.
모르탱,르 테이욀,그리고 트랑에서의 꿈같은 날들.
식구는 모두 열 명.
아버지는 도로 공사장의 인부였고,
우리에게는 넉넉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불행이 무엇인지 몰랐다.
우리는,행복했다.....고 화자는 말한다.
그들을 둘러싼 모든것은 그들에게
경이와 신비였다.
언제나 그 모든 것을 탐험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알랭 레몽은 그 소소하고 작은 마을 트랑을
'지상 낙원'이었다고 회술했다.
하지만 서서히 사회에 눈을 뜨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 환경 이외의 것에 눈을 돌리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꼭 십 년만에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누이 아녜스는 정신분열과 우울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자살했다.
하지만, 그래서 불행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비록 그 경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지만,
그것은 이제 인생에 있었던 '슬픈 일'일 뿐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것은 나의 상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모든 기억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 갈무리 되어져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슬픔도 아픔도 그 안에서 육화되어버린 것일까.
그것은 이미 자신의 일부이며
누군가의 동정이나 연민을 받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삶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지금보다 서른 해쯤 지난 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을 돌이킬 수 있을까.
이미 아문 상처를 쓰다듬으며
평온하게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아직은 그저,바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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